(시론) 싸움(shoot)을 찍다(shoot)
2025-09-08 06:00:00 2025-09-08 06:00:00
“어느 쪽 미국인? 중부 미국인? 남부 미국인? 뭐야, 어디야?”
 
이 질문은 조엘이 총부리를 들이댄 군인을 향해 ‘우린 미국인이에요!’라고 말한 뒤에 던져진 질문이었다. ‘우린 미국인’이라는 말은 너와 내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인데 내전이 벌어진 상황, 그러니까 서부군과 신인민군 그리고 플로리다 동맹이 서로 적이 되어 싸우는 전쟁에서 과연 ‘우린 미국인’이라는 어필이 군인들에게 통했을까? 
 
그런데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치러진 작은 총격전에서 조엘은 사뭇 다른 경험을 했다. 군인인지, 군복을 입은 민간인인지 알 수 없지만 조엘은 총을 들고 있는 두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디 군인이며, 당신들의 지휘관은 누구냐고. 그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지휘관은 없어요. 누가 우리를 죽이려 들면 우리도 죽이려 드는 거죠.”
 
그러니까 이때 서로 총구를 겨눈 이들은 나를 공격하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었다. 피아 구분 자체가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당신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편싸움을 하겠는가, 나를 공격하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싸움을 하겠는가. 
 
‘좀비 세상’을 그린 『28일 후』,  『28주 후』, 『28년 후』를 쓴 알렉스 가랜드 작가가 연출까지 맡은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내전 중 볼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을 종군기자의 시선으로 그린 영화이다.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을 만큼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중요한 건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인데 감독은 왜 대통령이 전쟁을 벌였는지를 설명하지 않고 그저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국민들만을 화면에 가득 담는다. 정치적 판단이나 비판을 배제한 채 말이다. 
 
사실 거의 모든 전쟁은 위에서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 발발의 주체가 대통령이었다는 게 특별할 것은 없다. 엄밀히 말해 정치의 본질 자체가 싸움이기에 국민을 설득하든 협박하든 정치인은 더 많은 지지층을 확보하면 그만이다. ‘내 손에 피 묻히는 것 아니다. 내 손은 상을 줄 때만 쓴다’는 게 그들의 불문율이 아니던가. 그러니 정치인이 만들어놓은 링 안에서 싸우는 건 결국 국민이다. 그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편을 나누든 무차별 난사를 하든 국민이 링 안에서 총질(Shooting)을 하는 동안 그들은 링 밖에서 관전하다 승리자에게 트로피를 건네주기만 하면 된다. 
 
정말 궁금한 건 링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 알고 싸우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을 위한 승리이며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중부와 남부를 따지고, 무차별적 공격을 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평범한 일반 국민은 언제나 평화를 원한다. 그런데도 국민이 원치 않는 링이 자꾸 만들어지고 누군가 계속 싸움질을 하고 있다. 진짜 승리는 링을 만드는 사람, 링 위에 올라가도록 만드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인데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튜브, SNS가 국민의 일상을 파고들면서 링 위에 자원해 오르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발적 투사가 되는 꼴은 더욱 볼썽사납다. <시빌 워>의 종군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들이 바로 이러한 순간들이다. 흡사 좀비 같은 싸움꾼들의 난장(亂場). 영화의 주인공인 '리'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계속 shoot(셔터를 누르는 것)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전장에서 살아남아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가 조국에 경고를 보낸다고 생각했어요. '이러지 마라.' 근데 이렇게 됐네요.” 
 
지금의 우리도 그렇다. 이제 일상을 살 법도 한데, 대선이 끝난 지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렇게 되고 있다.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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