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 혈액 한 방울로 집에서 '병원급 검사'
GIST, 차세대 바이오센서의 길 열어
2025-09-08 09:43:19 2025-09-08 14:33:40
그래픽 초록(Graphical Abstract). 혈액 내 수분 환경에 따른 적혈구 형상 변화, 삼투 조건별 나이퀴스트 플롯(Nyquist plot, 전기적 반응을 그래프로 표현한 것), 적혈구 내외부 이론 모델. (사진=GIST)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진이 혈액검사의 판을 바꿀 기술을 내놓았습니다. 병원 대형 장비에 의존하던 혈액검사를, 집에서도 혈액 한 방울로 거의 동일한 정확도로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바이오센서 플랫폼입니다. 의료 접근성의 혁신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혈액검사, 거대한 장비에서 손바닥 센서로
 
혈액검사는 인체 건강의 ‘거울’에 비유됩니다. 적혈구 수, 헤모글로빈 농도, 혈장 점도 등 수치 하나하나가 빈혈, 감염, 심혈관 질환을 조기에 가려내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검사에 많은 혈액 샘플이 필요하고, 값비싼 임상 장비와 숙련된 인력이 있어야만 가능했습니다. 응급 상황이나 일상적인 건강 모니터링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GIST 기계로봇공학과 양성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장비는 전혀 다릅니다. ‘미세유체 전기화학 임피던스 센서(MEIS)’라는 장치를 활용해 혈액을 실시간으로 전기적 신호로 읽어내는 방식입니다. 혈액이 좁은 채널을 흐르는 순간 전극이 감지하는 임피던스(전기 저항과 유전 특성)의 변화를 포착해, 적혈구 형태와 전기적 특성을 동시에 분석합니다.
 
연구팀은 이 원리를 통해 적혈구 수(RBC), 헤모글로빈 농도(Hb), 헤마토크릿(HCT) 등 병원에서 측정하는 6가지 핵심 혈액지표를 도출해냈습니다. 그 결과는 기존 병원 임상장비 분석 결과와의 일치율이 95%에 달했습니다.
 
삼투 조건에 따른 혈구 형상 변화를 홀로토모그래피 현미경으로 관찰. (위쪽부터) 저장성(Hypotonic), 등장성(Isotonic), 고장성(Hypertonic) 혈액 내의 적혈구 사진. (사진=GIST)
 
세포의 ‘물길’을 추적하다
 
핵심은 삼투 조건(tonicity)을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적혈구는 저장액에서는 부풀고, 고장액에서는 쪼그라들며, 등장액에서는 정상 상태를 유지합니다. 세포 내외 수분 균형에 따라 모양과 부피가 크게 변하는데, 기존 센서들은 이 미묘한 변화를 놓쳐 정확도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광학·홀로토모그래피 현미경으로 적혈구의 팽창과 수축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주파수대의 전기 신호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세포막과 세포질, 혈장까지 포함한 ‘전기적 지도’를 구축했고, 심지어 헤모글로빈 주변 수화 구조까지 반영해 새로운 분석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GIST 양성 교수는 “혈액 속 수분 변화를 반영한 분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접근”이라며 “세포 형태학적 변화와 전기적 특성을 동시에 정량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학적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연구 성과가 실용화되면 병원의 대형 장비 없이도 환자 곁에서 빠르게 혈액검사가 가능해집니다. 특히 심혈관 질환과 같이 조기 진단이 중요한 영역에서 진가를 발휘할 전망입니다. 또, 가정용 헬스케어 기기로 발전한다면 혈당측정기처럼 환자가 직접 매일 혈액 상태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됩니다.
 
기존 쿨터 계수기 방식이 단일 주파수로 세포 용적만 추정한 데 비해, 이번 기술은 다중 주파수 데이터를 종합해 혈액 성분의 전기적 특성까지 읽어냈습니다. 이 때문에 기존 방식보다 훨씬 정밀합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응용하면 혈장 점도까지 평가할 수 있어, 단순한 혈액검사 수준을 넘어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게재 예정인 국제학술지 Analytical Chemistry 선정 표지 그림. (사진=GIST)
 
의료 패러다임 바꿀 수 있어...국제 학계도 주목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분석화학(Analytical Chemistry)>에 8월26일 온라인판에 게재됐으며, 표지논문(front cover)으로 선정됐습니다.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한 즈바노브 알렉산더 연구교수와 이예성 석박사통합과정생은 “혈액검사 기술의 미래를 연다는 자부심으로 연구했다”고 밝혔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이번 성과는, 단순한 연구실 성과를 넘어 차세대 현장진단(point-of-care) 기기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집에서도 ‘혈액 한 방울’로 병원급 혈액검사가 가능해진다면, 개인 맞춤 건강관리 시대가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고령화로 늘어나는 만성질환 관리, 응급상황 대응, 원격의료 확대에도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양 교수는 “이제는 혈액검사가 병원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 것”이라며 “실시간 혈액검사와 차세대 진단기기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사 DOI: 10.1021/acs.analchem.5c01251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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