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정복의 길을 연 UCLA 교수들. 왼쪽부터 오언 위트 교수, 안토니 리바스 교수, 에드워드 개런 교수. (사진=UCLA)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암 치료의 역사는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의 연속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독성이 강한 화학요법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지만, 분자 표적치료와 면역항암제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최근 UCLA 뉴스룸은 대학 연구진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개척해 온 성과들을 정리한 특집 기사를 통해, 암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약물들을 소개했습니다.
UCLA 연구진이 바꿔온 암 치료의 지형 두 번째 편에서는 UCLA 연구진이 기여한 글리벡(Gleevec), 키스칼리(Kisqali), 키트루다(Keytruda), 사이람자(Cyramza) 네 가지 약물을 중심으로, 백혈병·유방암·흑색종·폐암 치료의 혁신을 살펴봅니다.
만성백혈병 환자에게 ‘첫 표적치료제’를: 글리벡(Gleevec)
1980년대 중반, UCLA의 오언 위트(Owen Witte) 교수는 만성골수성백혈병(CML)에서 특정 효소, 즉 티로신 키나아제(tyrosine kinase)의 과잉 활성화가 주요 원인임을 밝혀냈습니다. 이 발견은 암을 세포 수준에서 정밀하게 겨냥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후 오리건 보건과학대학의 브라이언 드루커(Brian Druker)와 제약사 노바티스가 이를 억제하는 약물을 개발하면서, 2001년 FDA가 승인한 글리벡(이매티닙, imatinib)이 탄생했습니다.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뿐 아니라 일부 급성 림프구성백혈병에도 효과를 보이며, 화학요법 중심의 치료에서 정밀 표적치료(precision medicine) 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약물이 되었습니다.
심낭액 내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을 보이는 인간 세포, 에스테라제 염색으로 400배 확대한 것임. (사진=National Cancer Institute)
유방암 재발을 늦추는 새로운 무기: 키스칼리(Kisqali)
2000년대 초, UCLA의 데니스 슬래몬(Dennis Slamon)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세포 주기 조절 단백질(CDK)을 억제하는 접근이 호르몬 수용체(HR) 양성 유방암에서 효과적임을 밝혀냈습니다. 이는 2017년 FDA 승인으로 이어진 키스칼리(ribociclib) 개발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슬래몬 교수가 주도한 NATALEE 임상시험입니다. 2024년 3월 발표된 결과는 HR 양성·HER2 음성 2~3기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서, 기존 내분비요법에 리보시클립을 병용할 경우 암 재발 없는 생존 기간을 유의하게 연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같은 해 9월 FDA는 이를 근거로 새로운 적응증을 승인했습니다.
이는 진행성뿐 아니라 조기 유방암 치료에서도 CDK 억제제의 효용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유방암 세포(사진=Dr. Cecil Fox, National Cancer Institut)
면역항암제 시대를 연 약물: 키트루다(Keytruda)
면역체계가 암을 직접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면역관문억제제(immune checkpoint inhibitor)는 현대 암 치료의 최대 혁신 가운데 하나입니다. UCLA의 안토니 리바스(Antoni Ribas) 교수는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의 임상 연구를 주도했습니다.
600명 이상의 전이성 흑색종 환자가 참여한 대규모 1상 임상시험에서 키트루다는 놀라운 효과를 보여 2014년 FDA의 가속 승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어 UCLA의 에드워드 개런(Edward Garon) 교수가 주도한 연구는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도 키트루다가 효과적임을 입증해, 2015년 폐암 치료 적응증을 획득했습니다. 이로써 키트루다는 흑색종에서 출발해 폐암 등 다양한 암종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며, 면역항암제 시대의 대표 약물이 되었습니다.
전이성 흑색종 세포. (사진=Julio C. Valencia, NCI Center for Cancer Research)
새로운 폐암 치료 옵션: 사이람자(Cyramza)
폐암은 전 세계 암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 UCLA의 에드워드 개런(Edward Garon) 교수가 주도한 다국적 임상시험은 기존 치료에 실패한 폐암 환자에게 사이람자(라무시루맙, ramucirumab)를 도세탁셀(docetaxel)과 병용했을 때 생존 기간이 연장된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10년 만에 나온 새로운 폐암 치료제 승인이었으며, 이후 위암·간암 등 다양한 암종으로 적응증을 확대했습니다. 개런 교수는 당시 “치료 옵션이 거의 없는 환자들에게 생존 연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UCLA 연구자들의 암 치료의 지평을 바꿔온 8가지 약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은 단순의 약물 개발을 넘어, 암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밀의학 시대의 개막을 알린 글리벡이나, 환자 스스로의 면역력을 무기로 삼게 한 키트루다가 대표적입니다. UCLA 연구진의 공헌은 단순한 신약 개발을 넘어, 암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를 재정의한 발상의 전환이 담겨 있습니다.
폐암 세포. (사진=National Cancer Institute, Fox Chase Cancer Cente)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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