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둥이 무너지는 사회
2025-09-09 06:00:00 2025-09-09 06:00:00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격언이 있다. 여러 해석이 있겠으나 나는 이 말을 ‘선의만으로는 안 된다’ 정도로 이해한다. 검찰 개혁으로 말들이 많다.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에 이견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 방법과 절차에 있어서 생각이 서로 다른 것이다. 거대 여당 민주당이 지금 추진하는 모습은, 방법 또는 내용을 떠나서 절차적으로 걱정이 많이 된다. 
 
“추석 전 통과”라며 속도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이는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 태도라고 본다. 속도전을 하려면, 첫째 내용 형성에 민주적 숙의 과정이 충분했고, 둘째 내용이 충분히 타당성을 갖추었으며, 셋째 그래서 여론 다수가 동의를 하는 상황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검찰 개혁안은 세 가지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형사 사법 체계는 국가의 기둥이다. 인류는 문명화되면서 야만의 사적 폭력을 금지하고 국가에 폭력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진화시켜왔다. 국가는 위임받은 그 거대한 폭력을 헌법과 법률이라는 수단으로 관리하면서 공동체 평화 유지에 사용하고 있다. 평화 유지에는 범죄 예방, 치안, 감시와 처벌, 교화가 주요 부분을 차지한다. 이 기능을 경찰과 검찰이 하고 있다. 
 
검찰은 헌법에 명시된 기구로 제정 이래 수십 년 동안 형사소송법 등 각종 법률에 근거하여 형사 사법 체계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그래서 검찰 개혁은 국가의 주요 형태를 변경하는 것으로서 극히 중대한 사안이다. 그리고 검찰의 작용과 역할은 국가 시스템에 이미 모세혈관처럼 유기적 결합된 상태여서 급하다고 마구잡이로 뜯어내면 안 된다. 심각한 국가적 출혈과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단히 치밀하고 차분해야 하는 대수술이다. 과연 지금 검찰 개혁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와 같이 절차적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으로 하고 내용에 대해서는 더 설시하지 않겠다.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검찰 개혁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정치권에 나쁜 흐름이 급격히 고착화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도 정당화된다는 식의 태도다. 극우 정당은 애초에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민주 진영이라고 불리던 세력들까지 가치 전도 행위를 주도하기 때문에 사회가 더 혼란해지는 것 같다. 지난 두 번의 총선에서 등장한 위성정당 문제가 대표적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여야 합의로 만들어놓고 여야 모두 스스로 이 제도를 무너뜨렸다. 
 
투표 경향에 결과가 ‘연동’되어야 보다 민주적 대표성을 갖는 국회가 구성이 된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인데, ‘연동’을 당하지 않는 꼼수 위성정당을 만든 것이다. 국제 정치학계에서도 ‘천재들’이라고 비꼬면서 혀를 내둘렀다. 최근에는 조국혁신당에서 성 추문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 사건 발생 자체도 문제지만 심각한 문제는 부적절한 해결 과정과 2차 가해다. 제 식구 감싸기식, 괜히 분란을 일으킨다는 식의 공동체 분위기는 피해자를 더 철저히 파괴하기 마련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조국혁신당 사건에서 가해자 또는 그 지인들은 피해자와 그 조력자를 공격하고 소외시켰고 유명 정치인은 공개된 자리에서 사건을 축소·왜곡하는 발언을 했다. 해당 유명 정치인의 사과문에는 변명이 가득했다. 본인과 당이 걷고 있는 대의명분 가득한 길에 대한 설명이 길었다. ‘진의’와 ‘맥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혐의를 반박하는 글에 가까웠다. 진짜 사과가 아닌 추가 가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선의’다”, “우리는 악당과 맞서고 있다”, “우리가 옳다” 이런 도덕적 우월감은 “우리가 이겨야 한다”로 이어지고 내부자들끼리 상승 효과가 심해지면서 “우리가 이기기 위해서 다른 가치들은 후순위가 될 수 있다”로 이어진다. 문제는, 후순위가 되어서는 안 될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전도 현상이다. ‘우리’ 가 집권을 해야 하니까 민주주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위성정당을 합리화하고, ‘우리’가 무너지면 내란 세력이 득세하니까 내부 성추문을 귀찮게 여기고,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는 정념에 사로잡혀서 검찰 개혁을 너무 졸속 추진하는 것으로 의심된다. 목적이 정당하니 수단도 자동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해서는 문명이 무너진다. 아름다운 세상에 살기 위해 걷는 중이라면 그 길도 아름다워야 한다. 그 길이 바로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