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 초강수로 고용 압박…마스가, 현지 숙련 인력난 ‘암초’
트럼프 비자 압박, 속내는 ‘고용 확대’
과거 SK온 조지아 공장 사태와 비슷해
미 조선업 황폐화…사실상 숙련공 없어
업계 “정부 차원에서 지원 및 대응해야”
2025-09-08 15:20:46 2025-09-08 17:50:13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미국 이민 당국이 미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단속 작전을 벌여, 한국인 300여명을 포함해 475명을 체포·구금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이를 두고 미국이 자국민 고용을 늘리라는 압박 신호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에 따라 한미 간 조선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미 조선업이 이미 황폐화돼 현지 숙련 인력난이 심각한 만큼, 프로젝트 추진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트럼프, ‘고용 압박’ 시작
 
미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이민 당국이 현지 한국 공장에 대한 대규모 단속에 나서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고용 압박’이 본격화됐습니다. 앞서 지난 4일(현지시각) 조지아주 서배너의 HL-GA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대대적인 불법 체류 단속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한국인 300여명이 체포·구금됐습니다. 
 
이번 단속의 표면적인 문제에는 비자 발급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미국 입국 시 전문직 취업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E2), 단기 상용 비자(B1) 등 발급이 쉽지 않아, 기업들은 주로 전자여행허가제(ESTA)에 의존해 단기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ESTA를 제외한 다른 비자들은 발급까지 평균 100일 이상이 소요되며, 협력 업체의 경우 원청 대기업보다 발급이 더 까다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의 이면에는 미국 내 고용 확대를 압박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이번 사안을 신고한 토리 브래넘 조지아주 연방 하원의원 후보는 “값싼 불법 노동력 때문에 훈련받은 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자 문제는 겉으로 내세운 이유일 뿐, 실제로는 고용 압박의 성격이 짙다”며 “지역 정치인들이 한국 기업의 현지 고용 부족을 문제 삼아 지역 민심을 선동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봤습니다. 
 
또 이번 ICE 단속은 2020년 SK온 조지아 공장 사건과도 닮았습니다. 당시에도 ESTA 비자로 입국한 한국인 노동자들이 불법 취업자로 분류돼 13명이 체포되고, 33명이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돼 강제 송환된 바 있습니다. 당시 공화당 소속 더그 콜린스 하원의원은 “한국 기업들이 자국민을 불법 고용한다”며 전면 조사를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에 SK온 측은 현장 노동자의 신원 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현지 고용 확대 방안을 마련하며 사태 수습에 나선 바 있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제공)
 
마스가, 시작부터 ‘난항’
 
최근 HD현대와 한화그룹은 미국 현지에서 ‘마스가’ 프로젝트 확대를 위해 투자와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었습니다. HD현대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미국계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탈과 손잡고 미 조선소 인수를 포함한 현지 투자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양측은 조선소 인수 후 현대화는 물론 첨단 조선 기술 개발과 기자재 업체 투자 확대에도 나설 계획입니다. 
 
한화그룹도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필리조선소에 약 50억달러(7조원) 규모의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놨습니다. 이번 투자를 통해 도크 2기, 안벽 3기와 12만평 규모의 블록 생산기지를 확보한다는 방침입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필리조선소의 연간 생산능력은 기존 1.5척 수준에서 20척으로 확대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미 정부의 대규모 단속이 본격화되면서 마스가 역시 출발부터 난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국내 조선사들이 미 조선업 활성화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고 있으나, 현지 숙련공 부족에 더해 한국 숙련공마저 비자 문제로 투입이 제한될 우려가 제기되면서 각종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내 현지 인력난은 현재 심각한 수준입니다. 용접공과 건설 노동자 등 제조업 필수 인력도 수급난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 제조업연구소(MI)는 미국은 2033년까지 약 190만명의 제조업 인력이 부족할 가능성이 크고, 향후 창출될 380만개 일자리 중 절반가량이 채워지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조선업계의 경우 상황이 더 열악합니다. 1920년 이후 미 조선업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현지 숙련 인력이 전무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필리조선소 고용 인원은 약 1700명이었지만, 이 가운데 3분의 2는 비숙련 혹은 간접고용 인력이었고, 숙련 기술자는 70명에 불과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마스가 추진 속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번 단속으로 비자 발급이 더욱 까다로워지면서 한국 인력 투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조선업은 최소 수천 명의 숙련공이 투입돼야 하는 만큼, 비자 발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프로젝트 지연과 투자 위축으로 마스가 추진 속도가 상당히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인력이 현지 인력 교육에만 참여하기를 원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재 조선업계는 당장 비자 문제에 직면해 있지는 않지만, 향후 유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업 차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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