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식량의 무기화 시대, 종자 전쟁
2025-09-10 06:00:00 2025-09-10 06:00:00
2022년 5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북동부에 위치한 국립 종자은행인 유리에우연구소를 폭격했다. 러시아가 이곳을 폭격한 목적은 종자를 파괴함으로써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의 식량난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1908년 설립된 유리에우연구소는 현재 약 16만종의 식물과 곡물 종자를 보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곡창지대 유지에 크게 기여해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식량의 무기화와 종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금융위기를 겪으며 5대 종묘 회사 중 4개 회사가 외국 기업에 매각되었다. 당시 업계 1위였던 홍농종묘는 멕시코의 세미니스에, 2위였던 서울종묘는 스위스의 노바티스에, 3위였던 중앙종묘는 미국의 몬산토에 각각 인수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 종자산업은 내리막길을 걸으며, 당초 우리 농산물이었던 청양고추, 양파 등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신세가 되었다. 
 
오늘날 세계 종자 연관 산업은 약 86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종자산업에 매진하는 이유는 소위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종자를 개발해 수출을 하면 엄청난 로열티 수입이 발생할 것이다. 전 세계가 종자 전쟁에 몰두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종자 수입액은 여전히 수출액의 2배를 넘어서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적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세계 식량의 무기화에 대한 희생국이 될 우려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한때 종자산업 육성화를 위해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에 걸쳐 총 4911억을 투자한 ‘골든씨드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이 사업을 통해 10년간 신품종 및 브랜드 955건을 개발했으며, 수출 2억5641만달러를 달성한 바 있다. 또한, 국산 품종 개발에 주력해 토마토의 자급률은 2012년 30%에서 55.3%로 큰 폭 상승했으며, 양파는 20%에서 29.1%로, 파프리카는 0%에서 6.3%로 각각 상승하는 성과를 보였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후속 사업이 없다는 점은 종자산업에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그렇다면 식량의 무기화 시대, 종자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우리의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종자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투자와 제도적 뒷받침이다. 예컨대, 신육종 기술 개발과 디지털 육종 등은 민간이 하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므로 적절한 R&D 예산 투입과 함께 실용화를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민간기업들도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전체 종자 기업들의 91%는 연매출액 5억 미만으로 자체적인 연구개발이 쉽지 않다. 이 경우 종자업계 스스로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 및 연구개발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셋째, 국내 종자 시장 규모는 세계 시장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므로 종자 개발은 해외진출을 목표로 둔 시장 확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계, 연구계, 산업계, 지자체 및 중앙정부가 협력하여 인력 양성, 연구개발, 제도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종자 주권 회복은 미래세대의 생존 및 건강과 안보의 초석이 됨을 잊지 말기 바란다. 
 
정원호 부산대학교 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