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홍보물. (사진=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존엄한 마무리.” 2018년 2월4일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7년 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국민이 3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2025년 9월9일 오전 9시 기준 누적 등록 304만8998명, 연명의료계획서 17만6435건,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이행 45만961건입니다. 이 제도는 더 이상 ‘특별한 선택’이 아닌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어디까지 왔나
연명의료결정제도는 ‘임종 과정’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기준과 절차를 마련한 국가 제도입니다. 법이 규정하는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에서 출발해, 현재는 체외생명유지술(ECMO),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으로 확대돼 8개 범주로 운영됩니다. 이는 환자의 최선 이익을 위한 의료적 판단에 따른 ‘그 밖의 연명의료’까지 포함합니다.
법이 규정하는 ‘연명의료’. (사진=보건복지부 홈페이지 화면캡처)
의향서는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건강할 때 본인의 의사를 미리 문서로 남기는 방식이고,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임종기 환자가 담당의사와 상의해 쓰는 문서입니다. 의향서는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 기관을 반드시 직접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작성해야 하며, 정보처리시스템에 등록돼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숫자로 본 7년: “300만 돌파”… ‘일상화’의 신호
의향서 등록자는 지난 8월 ‘300만’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보건당국과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집계에 따르면 8월10일 기준 300만3000여명을 기록했고, 9월1일 현재 303만여명으로 더 늘었습니다. 65세 이상의 경우 5명당 1명꼴로 의향서를 작성했고, 연간 30만~40만건 꾸준히 등록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같은 기간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이행 건수는 누적 44만8000여건으로, 기록된 의사의 의사결정이 실제 임상에서 실행되는 구조가 점차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의료 현장에서 나타나는 쟁점들
① 119·응급실: “의향서가 있어도 CPR을 멈출 수 있나”
가장 빈번한 오해는 ‘의향서가 있으면 어디서든 소생술을 중단할 수 있다’는 통념입니다. 법과 지침은 응급의료 단계(현장·이송·응급실)에서의 적용을 엄격히 제한합니다. 임종과정 판정, 이중 의사 확인 등 법정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응급 상황에서는 구급대가 가족의 구두요청이나 임의 DNR만으로 처치를 멈출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현장·이송 단계에서 연명의료결정법 적용이 배제되거나 사실상 곤란하다는 점이 반복해서 지적돼 왔습니다.
② DNR vs. 법정 문서: “병원 임의 양식의 한계”
여전히 일부 의료기관은 ‘DNR(소생중지) 동의서’ 등 임의 양식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DNR은 법률상 표준화된 서식이 아니어서 법적 보호와 절차 통일성이 떨어집니다. 반면 의향서·계획서는 법정 서식·절차에 따른 국가 등록 문서로서 의료진·환자·가족 간 분쟁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③ 가족의 역할과 판례: “누가, 어떻게 증명하나”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법은 가족 전원 합의 또는 가족 2인 이상 진술 등 절차를 통해 결정을 인정합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2009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기준과 환자 의사 확인의 중요성을 분명히 했고, 이는 이후 법제화의 계기가 됐습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작은 준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정부는 2024년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을 내놨습니다. 비전은 “누구나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받는 사회”로, ▲의향서·계획서 활용성 제고 ▲윤리위원회 확충 ▲데이터 연계·품질관리 강화 등이 핵심입니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중증 만성질환, 의료기술의 고도화와 함께 인공호흡기·ECMO의 ‘일상화’가 빠르게 진행됐고, 임종의 의료화가 심화됐습니다. 하지만 의향서는 치료 포기의 선언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본인의 가치와 목표에 맞춘 치료를 선택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는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 준비의 핵심에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임종기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품위 있는 마무리를 선택할 것인지 미리 밝혀두는 문서입니다. 의식이 없거나 의사 표현이 불가능해졌을 때를 대비한, 일종의 마지막 자기결정권 선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겪어온 아픈 경험은 사랑하는 이의 임종 앞에서 가족들은 종종 “치료를 계속해야 하나, 멈춰야 하나”라는 무거운 선택 앞에 놓입니다. 사전의향서는 그 고통스러운 결정을 대신해주며, 가족에게는 “환자의 뜻을 지켜드린다”는 안도감을 줍니다. 남겨질 이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인 셈입니다.
또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피하는 것은 환자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사회적으로는 의료 자원의 낭비를 막는 길이기도 합니다. 단 한 장의 서류가 개인과 가족, 나아가 사회 전체에 ‘좋은 죽음’을 가능케 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맞이할 생의 끝자락에서, 나의 마지막 모습이 나답기를 바란다면 지금이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어떻게 작성하나: ‘의향서 등록 절차’ A to Z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 19세 이상 성인 누구나 작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반드시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대형 병원이나 요양병원 등 의료기관, 보건소,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대한적십자사 지부, 호스피스 전문 기관 등)을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온라인·대리 작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작성 절차는 신분증(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을 지참하고 가까운 등록기관을 방문하여, 등록기관 소속 상담자와 1대1로 상담을 진행합니다. 상담자는 제도의 목적, 연명의료의 범위, 효력 발생 시점 등을 충분히 설명해 줍니다. 설명을 들은 후, 표준화된 서식에 따라 본인의 연명의료 관련 의사를 직접 작성하고 서명합니다.
작성된 의향서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전산 시스템에 등록되어 효력이 발생합니다. 언제든지 작성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등록 기관을 다시 방문해 수정 또는 철회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현황. (사진=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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