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청소년 근시 비율은 이미 70%를 넘어섰다. (사진=Gettyimagesbank)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근시(myopia)는 세계적인 ‘시력 전염병’으로 불릴 만큼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이면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근시에 걸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중국,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은 아동·청소년 근시 비율이 이미 70%를 웃돌며, 학부모와 교육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근시 발생 원인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사용 등 과도한 근거리 작업 ▲야외 활동 부족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적 소인 등을 꼽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학계에선 또 하나의 변수, 즉 식단(dietary pattern)을 추가했습니다. “눈 건강도 결국은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이 등장한 것입니다.
홍콩 연구진, 오메가-3는 보호 요인이라고 밝혀
영국의학저널(BMJ) 그룹이 발행하는 영국 <안과학회지(British Journal of Ophthalmology)>에 9월8일 게재된 연구는 이 같은 가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를 내놓았습니다. 홍콩 중문대학(The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협력 연구진은 홍콩 아동안과연구(Hong Kong Children Eye Study)에 등록한 6~8세 아동 1005명을 대상으로 식습관과 근시 진행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연구팀은 아이들의 안구 길이(axial length), 굴절 이상 정도(cycloplegic spherical equivalent) 등 객관적 시력 지표를 측정했습니다. 동시에 부모와 함께 작성한 식품섭취 빈도표(280개 항목)를 통해 탄수화물, 단백질, 총지방, 포화지방, 불포화지방, 비타민, 칼슘 등 주요 영양소 섭취량을 계산했습니다.
분석 결과 오메가-3 지방산 섭취량이 많은 아동일수록 눈의 축 길이가 짧아 근시 진행이 억제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한 아동은 안구 길이가 길어지고, 근시 정도도 심화됐습니다. 특히 오메가-3 섭취량 상위 25% 아동은 하위 25% 아동에 비해 축 길이가 눈에 띄게 짧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오메가-3 지방산이 안구 혈류를 개선하고, 맥락막(choroid)을 통한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해 근시의 주요 병인인 ‘공막 저산소증(scleral hypoxia)’을 막는 기전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단순한 연관성일까…한계와 의미
물론 이번 연구는 관찰연구(observational study)입니다. 인과관계를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식품 섭취 조사가 부모와 아동의 기억에 의존한 만큼 오차가 있을 수 있고, 혈액 분석 같은 객관적 수치가 부재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한 홍콩은 전 세계에서 근시 유병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어서, 다른 인종·환경에서도 같은 결과가 재현될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가 주는 함의는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근시는 주료 유전적 요인과 생활습관의 문제로만 여겨졌지만, 여기에 ‘영양’이라는 제3의 변수가 개입한다는 사실이 처확인된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인체를 대상으로 한 최초의 근거를 제시한다. 오메가-3 다불포화지방산(ω-3 PUFA) 섭취가 안구 축 길이를 짧게 하고 근시 진행을 억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연구진의 결론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습니다.
생선·견과류로 눈 건강 지켜야
이번 연구 결과는 생활습관 개선 전략의 중요한 보완책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근시 예방의 핵심은 여전히 야외 활동 시간을 늘리고, 스크린 노출을 줄이는 데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식단 관리가 보조 수단으로 작용한다면 더 효과적인 예방을 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대표 식품으로는 등푸른 생선(고등어, 연어, 정어리 등), 아마씨, 호두가 꼽힌다. 반면 버터, 팜유, 붉은 고기 등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은 가급적 줄이는 것이 시력 보호를 위해 권장됩니다. 이는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우리나라의 아동·청소년 근시율은 70%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초등학생 때 이미 안경을 쓰기 시작해,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도수는 점점 높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시는 단순한 시력 교정 문제에 그치지 않으며, 성인이 되면 녹내장·망막박리·황반변성 등 실명 위험이 높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연구가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이 아이들의 눈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힌 만큼 아이들의 식탁에 ‘눈 건강 레시피’를 적극 고려해야겠습니다.
논문 DOI: https://doi.org/10.1136/bjo-2024-326872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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