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부합하는가
2025-09-16 06:00:00 2025-09-16 06:00:00
지난 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 겸 조선로동당 총비서 김정은 일행의 특별열차가 중화인민공화국 수도 북경역에 도착했다. 붉은 카펫이 깔린 플랫폼에 발을 딛는 김 총비서에 뒤이어 그의 딸 김주애(12세) 양도 나타났다. 중국의 최고 국가 행사인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중한 것이다. 국내-외 언론들은 올해 12세로 알려진 김주애 양의 “국제 외교무대 데뷔”라고 호들갑 섞인 제목을 달아 1보를 내보냈다. “12세 딸을 권력 후계자로 점찍고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시켰다”고? 이게 근대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있어도 되는 일인가. 자극적 흥미에 치중한 언론들이 호들갑을 넘어 방정을 떤 것인가. 
 
이미 이뤄진 권력 3대 세습만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인데, 4대째 세습을 시도한다고? 설마, 과연, 그러랴 싶다만, 트럼프 2기 출범 후 한미일-북중러 3각 대결 체제가 다시 강화되는 이 시점에 북한 권력 체계 및 국가 운영의 봉건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비단 우리만의 관심사는 아닐 것이다. 주체 자강 자주 자립 과학기술 강국…다 좋고 대단한데, 민주공화제가 아니라 왕조 철옹 체제 앞에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무슨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서 민주와 공화는 빼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조선 인민’들의 생각이나 지향점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국호에서 ‘인민’도 빼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의 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하는 12살 어린이에게 무슨 권력 승계며 국제 외교무대 데뷔라는 말인가. 북한 지휘부는 정말 그렇게 민주공화정이란 용어에 대한 상식이나 지각이 결여돼 있을까. ‘김씨 일가의 세습적 지도 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는 신념 체계가 그렇게 확고한가. 그러고도 AI-디지털혁명 시대에 사회와 국가의 기틀이 미래 지향적으로 작동될 수 있을까. 
 
국정원이나 통일부가 김정은 총비서의 자녀 후계 사안에 대해 정확한 정보와 분석을 내놓으면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이해와 함께 남-북 관계 바로보기 차원에서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선거에 의한 민주공화정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 우리 국민들 입장에서 12세 소녀의 후계자설은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남-북한 이질화 심화에도 크게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관들이 뭘 내놓을 만큼 정확히 알고는 있을지 의아하다. ‘김주애 어린이 후계 이슈’는 과연 사실일까. 북한 인민들의 견해는 어떠한가…궁금한 점은 차고 넘친다. 
 
12세 어린이 후계 운운은 언론의 천박한 방정인가, 극히 일부라도 팩트인가. 어느 쪽이 됐든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다. 국가체제와 권력 형성 체계가 근대국가의 토대인 민주공화정에 가까워야 권력 정통성과 공식성이 확보된다는 게 정치학의 통설이자 상식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국체가 근대국가에 근접해야 ICBM-우주항공기술, 각종 기초과학기술 등이 제대로 인정받고 힘을 얻는 거 아닐까. 그래야 결과적으로 인민들 삶의 질이 고양되는 거 아닐까. 숭배와 신격화, 대를 이은 세습이야말로 비민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증좌다. 민주적이지 못한 것은 논의나 추구 대상이 아니다. 제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톈안먼 광장 전승절 행사는 제국주의 침략을 물리친 중국 인민의 역사적 승리를 기념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기리는 행사다. 반제 전쟁 승리와 4대 세습은 중첩 이해가 어렵다. 조선민주주의로 시작하는 국호의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 남북 평화 정착 없이 한반도 전체 민중의 삶의 질은 질곡을 피할 수 없기에 하는 얘기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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