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장거리 비행의 명수 흑꼬리도요
2025-09-22 09:50:03 2025-09-22 09:50:03
흑꼬리도요가 월동지인 호주, 뉴질랜드로 이동 중 충남 서천군 미산면 습지에 중간기착 먹이를 사냥하고 있다.
 
가을의 전령, 도요새들이 대이동을 시작했어요. 유난히 길고 무더웠던 지난 여름의 후유증이 이어지고 있지만, 낮 길이가 짧아지면서 한반도 황해 갯벌에 반가운 손님들의 노랫소리가 퍼지고 있지요. 경기 화성시 매향리 갯벌에 크고 작은 도요새 무리 중, 중간 크기인 38cm 정도의 흑꼬리도요 100여 마리가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일사불란하게 곡예비행을 합니다. 밀물이 몰려와 매향리 갯벌이 물에 잠기면 이들은 인접한 화옹호 습지로 이동합니다.
 
약 1만 1680km를 비행하는 장거리 비행의 명수 흑꼬리도요가 번식지인 러시아 아무르 습지, 캄차카반도, 몽골 습지, 미국 알래스카에서 남반구 호주, 뉴질랜드로 떠나기에 앞서 한반도 황해 갯벌에 찾아온 겁니다. 영원한 봄을 찾아 추위가 엄습하는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하는데, 가을철 한반도 황해 갯벌을 반드시 거쳐 가지요. 호주,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일부는 다시 한반도 황해 갯벌을 거쳐가지만, 일부는 쉬지 않고 곧바로 고향으로 날아가기도 해요.
 
2007년, 세계 철새 이동 연구사에 큰 이정표가 발표됐어요. 뉴질랜드 매시 대학의 필 배틀리 교수는 월동지에 찾아온 'E7'이라는 흑꼬리도요 암컷에게 위성추적 장치를 달았어요. 이 흑꼬리도요는 그해 3월 17일 뉴질랜드 미란다 습지를 이륙해 북한의 압록강까지 1만 200km를 1주일 만에 쉬지 않고 날아갔어요. 철새의 이동 기록 중 가장 긴 논스톱 비행 기록이지요. (이 기록은 2022년 알래스카에서 태즈매니아까지 11일간 약 1만3500km를 논스톱 비행한 큰뒷부리도요에게 깨짐.) 압록강 주변 습지에서 몇 주간 휴식을 취한 뒤, 5월 1일 다시 1300km를 비행해 고향인 알래스카 유콘 습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대장정을 기록했지요. 몸무게 400g을 넘지 않는 이 작은 새의 경이로운 장거리 논스톱 비행을 당시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했답니다.
 
흑꼬리도요는 분홍색 부리가 일직선이며, 꼬리가 검은 것이 특징입니다. 꼬리가 검은색이라 이름도 '흑꼬리도요'지요. 날개를 펼치면 흰 날개 선이 뚜렷하고, 허리는 흰색입니다. 여름깃은 머리부터 가슴까지 적갈색을 띠며, 가슴과 배에 가로 줄무늬가 있고, 겨울깃은 붉은색이 사라지고 가슴과 배의 줄무늬도 사라집니다. 가을철 우리나라를 찾을 때는 여름깃에서 겨울깃으로 변하는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있고, 봄철 우리나라를 찾을 때는 겨울깃을 보이지요. 가을철 우리나라를 찾는 흑꼬리도요 중 어린 티를 보이는 유조들이 많지만, 봄철 찾아오는 흑꼬리도요는 모두 성장한 개체들이지요.
 
 
가을철 이동중인 흑꼬ㄹㅣㄷㅗㅇㅛ 무리가 만조로 바닷물이 차자, 인천시 영종도 습지로 날아들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흑꼬리도요의 개체 수를 동아시아 개체군이 약 10만 마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 월동하는 개체 수는 약 16만 마리로, 북미에서 날아오는 개체수를 포함한 것이지요. 가을철 우리나라를 통과할 때는 갯벌과 강 하구에서 소규모 무리를 형성하지요. 9월 중순 강화도 갯벌에서 보이기 시작해, 한강 하구, 송도 갯벌, 화성 매향리 갯벌, 서천 유부도 갯벌을 순차적으로 통과합니다. 11월 초가 지나면 대부분 호주와 뉴질랜드에 도착했는지 우리나라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켁, 켁’ 짧고 반복적으로 노래하면서, 마치 한 마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수백 마리가 똑같은 행동을 보이며 비행하는 흑꼬리도요의 모습은 작은 도요새들의 일반적인 비행과 비슷합니다. 이들의 이동 길목을 지키고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 매의 공격을 다소 방어하려는 목적이지요. 무리에서 이탈해 홀로 행동하다가는 여지없이 매나 새호리기의 먹잇감이 된답니다.
 
흑꼬리도요는 강 하구, 갯벌, 논 습지에서 작은 게와 새우 등 갑각류와 갯지렁이, 곤충을 잡아먹습니다. 봄, 가을 장거리 비행하는 흑꼬리도요의 중간 기착지인 한반도의 갯벌이나 강 하구가 오염되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하는 흑꼬리도요의 비행도 지구상에서 사라집니다. 그들이 해마다 찾아오던 한강 하구의 김포 습지는 아파트 주거 단지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중간 기착지의 기능을 이미 상실했습니다. 번식지와 월동지의 환경이 아무리 좋아도 중간 기착지가 사라지면, 흑꼬리도요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흑꼬리도요의 중간 기착지인 한반도의 환경 파괴로 흑꼬리도요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비판은 없어야 합니다.
 
글·사진 = 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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