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국방장관 통화-틱톡 합의 이어 정상회담까지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트럼프, 시진핑 다 온다…경주 APEC이 '가교'
2025-09-23 06:00:00 2025-09-23 06:00:00
지난 2023년 6월18일(현지시간)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 등으로 가뜩이나 심각했던 미·중 관계가, 그해 2월 중국 정찰 풍선의 미국 본토 영공 침입 사태로 더 심각해진 상황에서 이뤄진 방문이라 주목도가 높았다. 그도 애초 2월에 중국에 갈 예정이었으나 정찰 풍선 사건 때문에 연기한 터였다. 
 
"중국은 미국의 이익을 존중하며 미국에 도전하거나 미국을 대체하지 않겠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블링컨은 "미국은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으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며 미국과 충돌할 의사가 없다"고 화답했다. 블링컨을 베이징에 보낸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미·중 관계가 올바른 길 위에 있다"고 평가하면서 시 주석을 만나겠다고 반색했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11월15일,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캘리포니아에서 만나 상호 충돌 방지와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 뒤, 군사 소통 등의 협력을 재개·확대하는 데 합의했다. 핵심 이슈인 첨단기술, 수출 규제, 공급망 등 경제 안보 이슈와 대만 문제 관련해서는 입장 차이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으나, 악화 일로였던 양국 관계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사진=연합뉴스)
 
둥쥔 국방 장관에…미 국방부 "중국과 충돌 추구 안 한다"
 
다음 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성사될 전망인 미·중 정상회담도 유사한 경로를 밟고 있어 기대감을 키운다. 미 국방부는 지난 9일 피트 헤그세스 장관이 둥쥔 중국 국방부장(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은 중국과의 충돌을 추구하지 않고, 정권 교체나 중국의 질식을 추구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중국이 가장 예민해하는 대목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가 유화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1기 때 국방부 중국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채드 스브라지아는 이에 대해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그렇게 말한 전례가 없다"며 "전례 없는 것이자 중대한 전환"이라고 평가했다. 헤그세스의 발언은 국방부가 의회에 4년 주기로 제출하는 최상위 국방 전략 문서로, 트럼프 행정부도 조만간 발표하기 위해 내부 회람 중이라는 국가방위전략(NDS·National Defense Strategy)이 중국 억제 등을 골자라고 알려진 것과도 차이가 크다. 
 
미·중은 또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미국 내 사업권 매각 문제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미국 내 월간 사용자 수가 1억7000만명에 달하는 틱톡의 모회사가 중국 바이트댄스라는 점 때문에,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때부터 이 문제를 안보 문제로 접근해왔다. 미국 의회는 작년에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틱톡 서비스를 금지하는 '틱톡 금지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달 14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양국은 틱톡의 미국 사업 처리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했고, 지난 19일 트럼프는 시진핑과 통화하면서 "틱톡 (거래) 승인에 대해 (시 주석에게) 감사드린다"며 이를 재확인했다. 
 
이처럼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의 '전환적 발언'과 미국의 골칫거리인 틱톡 문제 합의 등이 경주 APEC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데 밑자락이 됐을 것이다. 

트럼프·시진핑 6년 만에 정상회담…트럼프 2기에선 처음
 
미·중 정상의 동시 한국 방문은 2012년 3월 핵안보정상회의 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이후 13년 만이다.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도 2019년 6월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6년 만이다. 트럼프 2기에서는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는 것이다. 
 
'마지막 우호기'라 할 수 있는 오바마·후진타오 집권기에 비해 현재 미·중 관계는 극히 악화돼 있다. 특히 트럼프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 향배를 결정할 수 있는 시진핑과의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점에서 전 세계의 이목이 경주로 집중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희토류 수출 제한'으로 역공에 나선 중국에 대해 이미 두 차례 관세 협상 시한을 연장한 바 있다. 
 
트럼프가 1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바에 따르면, 양국 정상회담은 경주 APEC을 포함해 '조만간' 세 차례나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APEC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과 만나는 데 이어 "내년 초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며 "시 주석도 마찬가지로 적절한 시기에 미국으로 올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 예고대로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조건으로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미국 정부 발표를 원하고 있다"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21일자 기사는 그래서 주목된다. 대만 문제는 중국 역대 최고지도자들 모두가 '핵심 이익 중 핵심'으로 간주해온 사안인데, 미 국무부는 지난 2월 공개한 '대만과의 관계에 관한 팩트 시트'에서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반면 최근에는 중남미를 방문하려던 라이칭더 대만 총통의 뉴욕 경유를 불허하는가 하면, 대만에 대한 약 4억달러(약 5596억원) 규모의 군사 원조 승인을 유예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공개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지정학적으로 한국을, 동서양을 잇는 '가교'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며 "한국이 백악관과의 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역내에서 '교류와 협력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에 여전히 좋은 위치에 있다"고 했다. <타임>은 이 기사에서 이 대통령이 세계 양대 경제 강국 간의 긴장 수위를 낮추는 '가교'가 된다면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렇게 '가교'론을 내세운 지 얼마 안 돼, 대규모 실전 무대가 국내에서 만들어진 셈이다. 더욱이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를 계기로 베이징 톈안먼에서 시진핑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동하면서 미국과 중국 간 대립 구도가 뚜렷하게 부각된 시점이라는 점에서 가교 역할이 더욱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한·미 관세 협상도 이 대통령이 "미국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내가 탄핵 당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난항 중이어서, 트럼프의 경주 APEC 방문으로 실마리를 만들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협상 분위기 개선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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