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턴 차 사건’은 영국이 홍차조례(Tea Act of 1773)를 제정하여 식민지 미국의 홍차(紅茶) 수입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자 촉발된 조세저항운동이자 미국의 독립전쟁을 초래한 사건이다. 물론 당시 식민지 미국인들이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이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영국의 미국의 홍차 수입에 대한 관세 부과가 그 단초가 되었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그런데 영국은 무엇 때문에 미국의 홍차 수입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 것일까? 첫째, 세수 확보가 목적이었다.
당시 영국은 1755년부터 1763년까지 7년간 지속된 ‘프렌치-인디언 전쟁’ 중 지출한 막대한 전비로 인해 연간 세수 총액의 50%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부채가 쌓여 있었기 때문에 세수 증대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둘째,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조치였다. 당시 네덜란드와 미국은 홍차의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역 경쟁에서 뒤처지게 된 영국이 홍차 수입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인 미국의 홍차 수입에 관세를 부과했던 것이다.
요컨대 약 250년 전 영국에서 시행된 홍차조례와 그로 인해 촉발된 ‘보스턴 차 사건’ 및 미국의 독립전쟁은 당시의 패권국가인 영국이 세수 확보와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주도한 관세전쟁과 글로벌 유통망 재편 과정에서 파생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 미국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는 구호하에 영국에 저항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거쳐 현재의 미합중국이 탄생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18세기 영국이 주도한 관세전쟁과 글로벌 밸류체인의 재편 과정에서 패권국가인 영국과의 치열한 정치적·군사적 투쟁을 통해 성립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관세 명령으로 인해 전 세계가 시끄럽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하여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긴급 관세 명령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2일 별도의 제재를 받지 않는 모든 국가 수입품에 대해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으며 4월5일에는 보편관세 10%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이 발효되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 상품에 대해 25%의 관세율을 적용하면서 3500억달러를 선불로 투자하면 관세율을 15%로 깎아준다는 합의문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막가파식 행태는 ‘80년대 이후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경제 체제하에서 누적된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일방적 조치라는 점에서 250여년 전 패권국가였던 영국이 자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식민지 미국의 홍차 수입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 것과 그 성격이 전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도 ‘브레턴우즈 체제(Bretton Woods Regime)’로 대변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여 구축해온 핵심 가치와 그에 기반한 글로벌 질서 및 이를 수십 년간 지지해온 동맹국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은 미국의 자가당착이자 자기부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영국이 식민지 미국의 의회와 정부의 동의 없이 설탕세와 인지세에 이어 홍차에 대한 관세를 강제로 부과했을 때, 당시의 미국 정부가 영국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냉엄하게 반추해보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다행히도 미국의 국제무역법원과 연방순회항소법원 등의 판단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 관세 명령에 대한 위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종심을 판단하는 미국의 대법원 또한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돌이켜 보건대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경험의 산물이지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박제로 남는 기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호림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한국세무학회 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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