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 일본 천황의 군통수권과 한국 헌법의 군통수권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전후 80년 소감문' 화제
2025-10-14 06:00:00 2025-10-14 08:36:18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0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후 80년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한 '전후 80년 소감문'이 국내에서 화제다. 일본이 제국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함", "타자의 주장에도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는 관용"을 강조한 이시바의 담화문을 언론들이 잇달아 누리집에 전문을 올리면서 소개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도 "역대급", "명문"이라며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괜찮은 상대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쉽다"는 말까지 나왔다. 외교부 당국자도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함', '역사로부터 배워 나가는 것의 중요성' 등을 언급한 점에 주목한다"고 평가했다. 
 
"과거사 더 사과하지 않겠다"10년 전 아베, '전후 70년 담화' 발표
 
10년 전인 2015년 8월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에서는 전후 태어난 세대가 이제 인구의 8할을 넘고 있다"며 "그 전쟁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 보수·극우파의 총아' 아베가 앞으로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는 이 담화로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아베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가 지배하고 있는 일본 정계에서 이시바는 어쩔 수 없이 비주류다.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태평양 전쟁 종결을 '종전(終戰)'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달리 '패전(敗戰)'이라고 강조해왔고, 도조 히데키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도 참배하지 않았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에서 납득을 얻을 때까지 계속 사죄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시바는 자민당 내 강경 보수파와 우익 세력의 반발에 막혀 담화를 발표하지도 못할 뻔했다. 역대 일본 총리들이 199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주기로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패전일인 8월15일에 맞춰 담화를 발표해온 데 반해, 개인 명의 '소감' 발표에 그쳤고 발표 시점도 거의 두 달이나 늦어졌다. 게다가 이시바는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 후임 자민당 총재로 선출되면서 퇴임이 예정돼 있다. 이런 요인들이 오히려 그의 담화를 화제로 만든 배경이 됐다. 
 
천황의 군통수권+천황에 대한 절대복종 '군인칙유'=일본제국군
 
'일본은 왜 전쟁을 막지 못했는가'를 핵심 주제로 제시한 이시바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문민 통제 부재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아래처럼 천황의 군통수권(軍統帥權) 문제를 제기했다. 
 
"대일본제국헌법 아래에서는 군대를 지휘하는 권한인 '통수권'이 독립된 것으로 간주돼, 정치와 군사의 관계에서 항상 정치, 곧 문민이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문민 통제’의 원칙이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메이지헌법은 "천황이 육해군을 통수한다"(11조)고 했는데, 이 통수권은 실제로는 천황 직속의 군정기관인 참모본부가 행사했다. 여기에 모든 군인은 천황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해야 한다는, 일본제국군의 정신적 기초를 형성한 '군인칙유'(軍人勅諭)가 결합되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기본틀이 완성됐다. 일본군은 애초 유럽 국민군을 모델로 한 것이었으나 그 핵심인 '시민의 자발적 참여'는 빠진 괴물 군대가 돼버린 것이다. 
 
이시바는 이런 상황이 구체적으로 "'통수권의 독립'이 군의 정책 전반과 예산에 대한 정부 및 의회의 관여·통제를 배제하는 수단으로 군부에 의해 이용되기 시작했다"며 "정부는 군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갔다"고 지적한다. 
 
"대일본제국헌법(메이지헌법)에는 천황이 일본제국군의 최고통수권자로 규정됐고 모든 군인은 천황의 신하가 됐다. 모든 상관은 곧 천황의 대리자였고, 상관에 대한 충성과 복종은 곧 천황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의미했다.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불복종은 천황을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강건작 전 육군 중장, 『강군의 조건』, 228쪽) 
 
물론 패전 이후에는 달라졌다. 우선 군통수권 용어 자체가 사라졌다. 이시바의 말대로 "정치와 군사를 적절히 통합하는 구조가 없고, 통수권의 독립이라는 이름 아래 군부가 독주했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적 보완"을 한 것이다. 내각총리대신과 기타 국무대신은 문민이어야 한다고 헌법을 바꿨고, 자위대도 천황이 아니라 내각총리대신의 지휘를 받게 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사진=뉴시스)
 
한국 헌법에 남겨진 군통수권+'까라면 깐다'는 절대복종=12·3 친위 쿠데타
 
일본에서는 없어진 군국주의 용어 '군통수권'이 한국에는 늠름하게 살아 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제74조)고 해놨다. 한국군은 미군 하드웨어에 일본군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탄식의 실증 사례다. 
 
명시적인 군인칙유는 없지만 '까라면 깐다'는 상관에 대한 절대복종도 그대로 남아 있다. 군인의 기본권 보장 기본법인 현행 군인복무기본법은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했을 뿐 위법·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없다. (판례는 있으나 명문 조항은 없다.) 지난 12월 3일의 친위 쿠데타가 바로 이런 대통령의 군통수권과 당부당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상관에게 절대복종하는 군 문화가 결합하면서 벌인 사건 아닌가. 
 
이시바는 제국주의 일본에 '문민 통제 원칙'이 부재한 가운데 △대일본제국헌법 △정부 △의회 △언론 △정보 수집·분석 등 다섯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그는 과거사 문제 자체를 외면하는 자민당 주류 정치인들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일본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가"가 아니라 "왜 그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가?"라고 묻는다. 질문이 그러니 제국주의 시절 일본 내부 시스템에 대한 반성은 넘치지만, 전쟁 가해 책임에 대한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이시바는 "패전 50년, 60년, 70년 담화 모두 (역사 인식에 대해선) 기본 인식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반성에 대해) 새로 추가할 건 없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 사과는 종지부를 찍었다는 2015년 아베의 '전후 70년 담화'도 그대로 수용한 셈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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