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국에서 가장 큰 석탄화력 발전소였던 드랙스(Drax) 2021년부터 연료를 바이오매스로 전환했다. 석탄을 쓰던 시절의 발전소 모습. (사진=GettyImages)
[뉴스토마토 서경주 객원기자] 전 세계 전력 생산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습니다. 영국의 비영리 에너지 싱크 탱크 엠버(Ember)가 발표한 ‘2025 세계 전력 보고서(Global Electricity Review 2025)’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전 세계 전력의 34.3%가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되어, 사상 처음으로 석탄(33.1%)을 추월했습니다. 이는 1882년 에디슨의 펄 스트리트 발전소가 전기를 상용화한 이래 143년 만의 일입니다.
엠버는 이 보고서에서 태양광과 풍력, 수력과 바이오에너지의 합이 석탄을 앞지른 2025년을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이 가시화된 원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청정에너지가 주도권을 잡는 새 시대의 시작’으로 평가했습니다.
통계로 나타난 ‘전환점’
엠버 보고서의 주요 수치를 보면, 전 세계 발전 에너지원 가운데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수력·바이오 등)가 34.3%, 석탄이 33.1%, 천연가스 22.5%, 원자력 약 9%로 나타났습니다. 태양광 발전은 전년 대비 23%, 풍력은 12% 증가한 반면에 석탄 발전은 0.6% 감소했습니다. 이는 태양과 바람이 늘어난 전력 수요를 완전히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까지 성장했다는 의미입니다.
엠버의 선임 전력 분석가 말고르자타 비아트로스-모티카(Malgorzata Wiatros-Motyka)는 “우리는 중요한 전환점의 첫 징후를 목격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이제 전 세계의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할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과 인도 에너지 전환 선도
전 세계 전력 전환의 속도는 아시아가 이끌고 있습니다. 엠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태양광 발전 증가의 55%가 중국에서 발생했습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태양광 패널 생산국이자 설치국으로, 지난 10년간 패널 가격을 90% 이상 낮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라이스대학교의 대니얼 코언(Daniel Cohan) 교수는 미국 공영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재생에너지 전환에서 선도적인 성과를 낸 이유를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일찍 내다보고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중국은 미국의 벨연구소(Bell Labs)에서 처음 개발한 기술을 자체적으로 대규모 생산 체계로 발전시켰다. 해마다 생산 단가를 낮추고 효율을 높인 결과 태양광 패널 가격이 90% 이상 하락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게 태양광 패널을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 역시 풍력과 태양광 인프라를 빠르게 확장해 재생에너지 투자 규모에서 세계 3위에 올랐습니다. 헝가리, 파키스탄, 호주 등도 올 상반기 국가 전력의 20% 이상을 태양광으로 충당하며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여전히 늘어나는 전력 수요의 일부를 석탄과 천연가스로 채우고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태양광 성장분의 14%만을 차지해, 중국(55%)에 비해 성장세가 둔화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언 교수는 전력 수요 급증이 미국의 에너지 전환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미국의 전력 수요가 최근 들어 데이터센터, 인공지능, 암호화폐, (기후변화에 따른)냉방 수요 등으로 매년 3% 이상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풍력과 태양광이 늘어도 전력 수요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 결국 기존의 석탄·가스 발전소를 더 강하게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신흥국들 ‘클린 인프라’에 선제적 투자
엠버의 비아트로스-모티카는 “청정 성장을 뒷받침하는 인프라 투자는 오히려 신흥국들이 선진국보다 빠르게 늘리고 있다”고 평가하고 “중국, 인도, 브라질, 파키스탄 등은 향후 수요 증가를 예상하고 대규모 송전망·저장 설비·풍력 단지에 미리 투자했다. 반면 일부 선진국은 제도 개편과 인식 전환이 늦어 성장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같은 전략적 투자 덕분에 2025년 상반기 세계 전력 시장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소폭 감소했습니다. 태양광과 풍력이 수요 증가분을 초과함으로써 화석연료 사용량이 줄어든 것입니다.
엠버는 이를 “작지만 명확한 변화의 징후”로 평가하며, “세계 전력 부문이 탄소 배출 정점(peak emission) 을 지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OECD 평균의 절반
엠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아직 세계 평균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전력 에너지 믹스는 2024년 기준 석탄 27%, 천연가스 33%, 원자력 29%, 재생에너지 9~10%입니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60%에 이릅니다. 그러다 보니 1인당 에너지 부문 CO₂ 배출량은 10.9톤으로 OECD 평균보다 약 2배 많습니다.
한국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량을 20%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제시한 세계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량 점유율 6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낮은 원인으로는 서울과 수도권의 송전망 포화, 해상풍력 인허가 지연, 지붕형 태양광 보급률 저조 등이 지적됩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탄소중립 2050 목표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최소 3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기후환경에너지부 출범 이전인 산업자원통상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에도 석탄 발전이 전체 전력의 27%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국내 발전사들이 노후 석탄발전소를 LNG로 전환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 엠버보고서 링크:
https://ember-energy.org/latest-insights/global-electricity-review-2025/
서울의 태양광발전소 나눔발전소1호. (사진=에너지나눔과 평화)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