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토마토](보험, 돌봄을 품다)③독일, 민간이 메운 요양의 빈자리
공보험의 한계 채우며 급성장하는 '추가 장기요양보험'
가입자 맞춤형 서비스 구조로 의료·요양 수요 공백 보완
복지제도 간 긴밀한 연계가 만든 새로운 민간보험 모델
2025-10-24 06:00:00 2025-10-24 06:00:00
이 기사는 2025년 10월 22일 17:00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최윤석 기자] 독일은 사회복지 선진국이라 불린다. 1995년부터 독일은 근로자의 노후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최근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자 증가와 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 인력 공급 부족으로 보다 나은 수준의 요양 서비스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독일 보험사들은 요양 전반을 보장하는 추가 장기요양보험을 상품 개발해 시장에 선보였다.
 
추가 장기요양보험으로 은퇴 후 부담 덜어
 
베를린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슈판다우는 자연이 어우러진 한적한 주거지다. 주로 은퇴한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곳엔 동화 속 집 같은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30여년 간 고등학교에서 과학과 철학을 가르친 랄프 발터씨도 은퇴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발터씨는 의무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된 1995년에 가입했다. 재정적인 문제보다는 다양한 서비스를 알아서 챙겨주는 사보험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독일 요양보험 시스템은 다른 유럽국가처럼 공보험과 사보험으로 나뉜다. 현재 공보험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지만, 서비스 문제로 사보험 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발터씨는 가입 때부터 30유로 내외의 요양보험비를 매월 납입했다. 현재는 시설 입주 전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추후 요양원 입소 때 드는 비용은 보험사가 지불한다.
 
발터씨는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공보험과 사보험 사이에서 고민할 당시 의료 서비스에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써 줄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현재 사보험 가입을 가입하고 30년이 지난 이후에도 비교적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현재 독일의 모든 근로자는 사회요양보험법(Soziale Pflegeversicherung법, SGB XI)에 따라 의무요양보험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해당 법안은 근로자가 은퇴 이후 의료서비스와 요양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고안된 제도다. 하지만 현행 장기요양보험으로는 요양 서비스 비용의 일부를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를 보안하기 위해 사보험사를 중심으로 고안된 것이 추가 장기요양보험(Pflegezusatzversicherung)이다. 가입자가 요양시설 입소 또는 재택에서 요양 서비스 이용 시 발생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상품이다.
 
해당 보험은 공보험 의무요양보험 가입자도 가입이 가능한 상품으로 가입자 선호에 맞게 자율적으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 보험사는 가입자가 가입한 상품 유형에 맞춰 요양 서비스 이용시 요양시설에 비용을 대납한다.
 
독일 현지에서 요양 의료서비스 내과 전문의 서양렬 씨 (사진=IB토마토) 
 
독일 현지에서 병원을 운영 중인 내과 전문의 서양렬 씨는 사보험의 추가 장기요양보험은 공보험의 빈자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운영 중인 병원은 요양원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매주 요양원 입주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용을 보험사에 청구한다. 하지만 요양시설 이용이나 목욕과 같은 요양 서비스에 대해서는 보험 가입자가 부담해야 한다.
 
의료 서비스에서도 장기요양보험이 메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공보험의 경우 가입 당시 소득에 비례해 요금과 혜택을 정한다. 이에 따라 보험을 가입했어도 요양과 의료 서비스 이용에서 별도 비용을 부담해야 경우가 생긴다.
 
사보험도 가입 당시 건강상태, 원하는 서비스 수준, 가입 이후 수혜 시점에 따라 요금과 보장 범위가 달라진다. 하지만 대체로 요양원 입소에 대해서는 개인이 부담한다.
 
이에 따라 제공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 비용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고 의료 진료에서도 대기시간이 길어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추가 장기요양보험은 이를 보완해 보험 가입자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대신 부담한다.
 
서씨는 <IB토마토>에 “공보험의 경우 결제와 지불까지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법령에 따라 치료에 쓸 수 있는 약도 한정적”이라며 “추가 장기요양보험은 기존 장기요양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어 요양 의료 종사자와 가입자 모두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라고 말했다.
 
공적 보험 빈자리를 메우다
 
독일의 요양서비스는 환자나 노인의 상태에 따라 5등급으로 나뉜다. 제공받는 혜택이 등급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3등급을 받은 가입자에게 주어지는 요양 혜택의 총액수는 일정 기간 동안 1497유로(한화 약 243만원)다. 보험 수혜자는 현금으로 직접 받을 수도 있고 이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도 있다. 현재 독일 보험 가입자의 대부분은 현금 급여를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요양원 입소나 요양서비스 비용에 대해서는 개인이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한다. 독일 연방 보건부에 따르면, 요양보험 가입자의 요양 시설 입소 혹은 재택 요양에서 개인 평균 부담금은 1830유로 수준이다.
 
현재 사보험 시장에서 추가 요양보험 사업에 진출한 보험사는 아락(Arag), DKV, 할레슈(Hallesche), 한스메르쿠르(HanseMerkur), SDK가 있다. 이들 회사는 근로자를 고용하는 법인을 대상으로 영업한다. 서비스의 강점을 내세우고 회사가 직원들에게 가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한스메르쿠르(HanseMerkur Health Insurance AG)는 독일 요양보험의 선두주자 중 하나다. 한스메르쿠르는 2024년 독일 금융서비스연구소(DFSI)에서 주관하는 추가 의무장기보험 평가에서 우수 등급과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특히 새롭게 출시된 개인 간병 보험은 ‘매우 좋은(Very Good)’ 등급을 받았다.
 
한스메르쿠르는 현재 젊은 예비 고객을 대상으로 한 장기요양보험 상품에 주력하고 있다. 20대에서 30대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해당 상품은 상대적으로 일찍 가입해 보험금 축적 기간을 늘리는 한편, 월 보험료 부담을 최대한 줄였다.
 
회사에 따르면 20대 예비고객은 월 5.18유로를 추가 부담하면 노후 의료 요양서비스 뿐만 아니라 보험 기간 중 심각한 사고나 질병이 발생할 경우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사진=IB토마토)
 
디르크 베커(Dirk Becker) 한스메르쿠르 대외협력 담당자는 “추가 의무요양보험은 법정 장기요양보험을 보완하는 중요한 상품“이라며 “현재 법정 장기요양보험만으로는 요양 비용의 일부만을 보장하지만 추가 장기요양보험은 평생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르고(ERGO) 보험그룹의 보험자회사 DKV도 한스메르쿠르와 마찬가지로 생애 전반을 보장하는 추가 장기요양보험을 출시했다. 독일 장기요양보험 시장 점유율 2위인 DKV는 지원 의료에 따른 가격 정책을 세분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보험 가격 비교 서비스도 제공한다.
 
독일 내 보험사들은 기존 사보험 가입자들에게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추가 장기요양보험 시장을 키웠다. 특히 사보험사의 장기요양보험은 최초 가입자에게 추가 장기요양보험을 같이 가입하는 것을 추천해 보험료 수수 구간을 늘려 수익성과 안정성을 키웠다.
 
독일 보험사들이 추가 의무요양보험 상품을 개발하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복지제도와의 연계를 통해 가능했다. 실제로 1995년 장기의무보험 도입 이후 독일 의료 복지시스템과 의견을 조율하는 등 사보험은 공보험과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됐다.
 
독일사보험연합 옌스 베그너(우)가 <IB토마토>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IB토마토)
 
독일사보험연합(Private Krankenversicherung 이하 PKV)는 독일 민간 의료보험 회사 42곳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다. 단순히 보험사 연합이 아니라 요양원 비용 협상과 주요 기업들의 보험 상품 규정, 정책 의견 조율을 맡는다.
 
옌스 베그너(Jens Wegner) PKV 대외협력 담당 임원은 <IB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사보험사들이 추가 장기요양보험과 같은 상품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복지제도 간 연계”라고 말했다.
 
그는 “독일은 이전부터 의료보험부터 현재의 요양보험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으로 사회복지 시스템을 발전시켜왔다”라며 “그 과정에서 현재의 추가 요양보험과 같은 상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사업 시작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며 “근로자들이 의무적으로 요양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베를린 = 최윤석 기자 cys55@etomato.com, 윤상록 기자 ys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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