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유지웅 기자] 정부가 49개 중앙행정기관에서 내란 가담 공직자를 솎아내겠다며 띄운 '헌법존중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를 두고, 세종 관가에는 "도가 지나치다"는 기류가 퍼지고 있습니다. 고위직은 표적이 될까 우려하고, 하위직은 '내 일 아니다'라며 선을 긋습니다. 그러나 "내란 청산은 명분일 뿐, 정권 코드에 맞는 인사로 고위직을 재편하려는 의도"라는 시선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적폐청산' 때와는 다르다?…공직사회는 '불안·냉소'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상필벌(공 있으면 상, 죄 있으면 벌)은 조직 운영에 있어 기본 중 기본"이라며 "설마, 벌만 주던가 상만 쥐야 한다는 뜻은 아니겠지요?"라고 적었습니다.
이 게시물에는 최근 정부가 '12·3 비상계엄 가담 공직자 색출'과 '공무원 처우 개선'을 동시 추진하는 데 대해 공직사회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론 기사가 첨부됐습니다. 공직자 조사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TF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앞서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관련 TF를 제안했을 때도, 이 대통령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힘을 실었습니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이번 조사 대상은 대통령 직속 기관과 독립기관을 제외한 중앙행정기관(49개) 소속 공무원 75만명입니다.
각 기관은 오는 21일까지 내부에 자체 조사 TF를 꾸리고, 다음 달 12일까지 조사 대상 행위를 확정해야 합니다. TF는 최소 10명 이상으로 꾸리되, 구체적 규모는 각 기관이 '재량껏' 결정합니다. 제보 센터는 반드시 설치해 운영해야 합니다.
조사는 내년 1월31일까지 진행되며, 이후 총리실 산하 총괄 TF가 결과를 검토해 2월13일까지 인사 조치를 마무리합니다. 정부는 문재인정부 시절 '적폐청산위원회'가 재현될 것이란 우려를 의식한 듯, 이번 TF는 "다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시 적폐청산위가 5년 내내 운영되며 공직자들이 피로감을 호소했고, 외부위원 중심의 운영 방식에 대한 반발도 컸습니다. 정부는 단기간 집중 조사로 공직사회 불만을 가라앉히고, 적극적 가담이 아닌 이상 처벌은 최소화해 동요를 줄이겠다는 방침입니다. 사무관보다 낮은 직급의 하위직 공무원은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그러나 공직자들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 A씨는 "승진 경쟁자를 향한 익명 투서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공직사회 내 불신만 키우는, 공직사회 활력 저하 방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실제 일선 부처에서는 이미 관련 투서가 난무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씨는 "정권 바뀔 때마다 동네북이 되는데, 이런 방식이면 정권을 신뢰하기도, 충성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실무급 공무원 D씨는 "공직사회는 '우린 털어봤는데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보고하기 어려운 문화"라며 "TF 입장에서는 억지로라도 뭔가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는 공무원 동료끼리 조사·검증하는 방식을 두고서 "북한식 자아비판 회의 같다"고 직격했습니다. 자아비판 회의는 당사자에게 스스로 잘못을 털어놓게 하고, 옆 사람도 서로를 비판하게 만드는 공개 반성 절차를 뜻하는데, 이번 TF가 그런 강압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발적 제출' 뒤에 숨은 압박…"공직사회 충성 심사"
D씨는 정부가 개인 휴대전화를 '자발적 제출'이라고 한 데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는 "공직사회에서는 안 내면 찔리는 것 있는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며 "정년·진급에 묶인 직업 공무원들은 제출 요구를 버티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총리실은 개인 휴대전화는 자발적 제출을 유도하되, 협조하지 않을 경우 대기발령이나 직위해제 후 수사 의뢰까지 검토한다는 방침입니다. 말만 '자발적 제출'인 셈입니다.
실무급 공무원 C씨는 "49개 부처 75만명이 조사 대상이지만, 실제 조준점은 특정 부처, 고위직, 전 정권 핵심 라인에 맞춰질 것"이라고 봤습니다. '전 부처 전수조사'는 공정성을 내세운 포장일 뿐, 실제로는 특정 부처·직급만 겨냥할 경우 불거질 표적·보복 인사 논란과 행정소송·소청심사 위험을 피하려는 '법적 방탄' 장치라는 분석입니다.
그는 "원래 정권이 교체되면 실장급·고위직은 말 안 해도 다 나가던 것이 관례였는데, 그 관례가 깨진 게 이번 TF 출범의 배경"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하위직이라 표적이 될 수가 없다"면서도 "정권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는 게 공무원은 숙명이라지만, 사법기관도 아니고 휴대전화 제출은 심하다"며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국장급 공무원 A씨는 "대다수 공무원이 계엄에 대해 잘 모르고 관여도 안 했다"며 전 부처를 대상으로 대규모 조사를 벌이는 것에 대해 "결국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 아니겠냐"고 했습니다.
이어 "결국 이번 정권과 손발이 맞는지, 즉 충성할 사람인지 숙청 대상인지 가려내려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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