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금주 기자]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강세와 환율 하락으로 이어지던 전통적 공식이 깨졌습니다. 최근 개인을 중심으로 해외투자가 빠르게 늘면서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원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고령화에 따른 소비 감소와 저축 확대도 이러한 구조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한국은행은 1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구조적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하며 과거와 달리 상품 요인보다 금융 요인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고 밝혔습니다.
환율 결정축 이동…상품→금융
'상품충격'은 수출입 등 실물 거래 변화가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의미합니다. 전통적으로는 수출이 늘면 외화 유입이 확대되고 경상수지가 개선되면서 원화 가치가 오르고 환율이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흐름이 약화됐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원·달러 실질환율 변동의 약 80%는 금융충격, 19%는 상품충격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질환율은 명목 원·달러 환율에 양국 물가를 반영한 지표로, 1999년 기준 연평균 변화율로 산출됩니다.
특히 2015년 이후 '금융충격'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확대됐습니다. 금융충격은 자본 유출입 등 금융 거래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합니다. 국내 자금이 해외로 이동하면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하더라도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환율이 상승하는 압력이 발생합니다.
해외투자 급증…'달러자산 수요' 환율 좌우
최근에는 금융충격 가운데 '달러자산수요 충격'이 환율 상승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코로나19가 본격 확산한 2020년 이후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투자자들이 달러자산을 빠르게 늘리는 과정에서 외환시장 내 달러 수요가 증가하며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입니다.
김지현 한은 국제국 국제금융연구팀 과장은 "2020년 이전에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이 거의 없었는데 코로나 이후에 급격하게 늘었다"며 "국내 거주자가 해외 자산을 빠르게 축적하는 과정에서 외환시장이 타이트해져 환율이 올라간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순대외자산국으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흐름은 구조적으로 강화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과거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외환보유액으로 축적되며 환율 안정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최근에는 민간의 해외투자 확대에 따라 자본 이동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이전보다 커진 것입니다.
고령인구 증가도 영향…단기 변동 영향은 제한적
인구구조 변화도 금융충격 확대의 배경으로 지목됩니다. 한은은 2011년 이후 저출산·고령화 영향으로 소비보다 저축이 늘어난 점에 주목했습니다. 노후 불확실성 확대에 따라 가계의 저축 성향이 강화되면서 소비가 줄고 팔지 못한 재고가 수출로 이어져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한은은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가 환율의 단기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저축 요인은 금융시장보다는 실물경제를 통해 점진적으로 작용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원화와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환율 변동성 확대…예측 가능성↓
이처럼 금융 요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환율 변동성도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우리나라는 주요국 대비 금융충격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큰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우리나라의 회귀계수(원인 변동에 따른 결과 변동을 나타낸 수치로, 클수록 영향력이 큼)는 0.65로 일본(0.38)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늘어난 달러 수요를 외환시장이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로 분석됩니다.
특히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단기적인 환율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단기적으로는 전쟁이 환율 변동에 미치는 영향이 제일 크다"면서 "만약 종전 시 변동성은 상당히 줄겠지만, 유가가 높게 유지되고 이스라엘 도발 위험도 존재하기 때문에 잡음은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은 단기적으로는 달러 수요 쏠림을 완화하는 수급 대응에 나서고, 중장기적으로는 외환시장 심도를 높이는 정책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이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입니다. 다만 대내외 자금이 미국으로 쏠릴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강 교수는 "미국이 선거에 대비해 경제 활성화, 주가 띄우기 그리고 물가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금리를 조정한다면 국내 투자자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주식 시장이 지난 1년처럼 오를 상황이 아니라 WGBI에 편입이 됐지만 역부족이다. 물론 편입되면서 최소한의 수준은 들어오는데 그건 이미 어느 정도 들어왔다"고 꼬집었습니다.
윤금주 기자 nodrin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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