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26일 일본 여행 중에 관광버스가 일본의 유명한 신사를 찾아가던 길에 이즈모시를 지나게 되었다. 이즈모 시청의 간판이 눈에 들어오자 오랫동안 잊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즈모시 이와쿠니 데슨도 전 시장은 1989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 시장으로 있으면서 “행정은 최대의 서비스 산업”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혁신적 행정서비스를 도입해 지자체 혁명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신임 교수 때 마케팅 강의에서 이즈모시 사례를 소개하면서 행정도 고객 만족 활동이라고 강조했는데, 이즈모 시청을 지나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와쿠니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증권회사에서 30년간 금융 전문가로 활동하던 차에 인구 8만의 조그만 도시의 시장이 되었다. 그는 행정의 주인은 시민이고, 시민은 고객이라고 선언했다. 쇼핑센터 내부에 주말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종합복지카드와 나무의사제도를 도입했다. 혁신적 서비스 행정 실시로 1991년에 이즈모시는 소니, 토요타 등 초일류 기업과 함께 일본능률협회 종합 마케팅 상을 수상해 유명해졌다.
이와쿠니씨의 근황이 궁금해 버스 안에서 구글링해 보았다. 그는 이즈모 시장을 퇴임하고 도쿄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뒤 4차례 중의원(민주당)을 역임하고 2023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와쿠니씨가 이즈모 시장으로 재임할 때인 1995년에 한국에서는 민선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가 시작됐다. 이즈모시는 한국에서 모범적 지방자치 사례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이와쿠니씨도 한국 방문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경험과 노하우를 제공했다.
이와쿠니 시장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기초자치단체장에서 출발해 국가 지도자가 된 이재명 대통령이 혹시 그의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 귀국 후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이 대통령이 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는 사실은 찾지 못했으나 “시민이 주인인 성남, 시민이 행복한 성남”이라는 구호 아래 세금은 시민이 내는 요금이므로 세금이 아깝지 않게 복지로 돌려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 점에서 이와쿠니씨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양자는 항상 관례와 관행을 깨고 혁신적인 방안으로 관료주의를 극복하려 했다.
지난 6일에 열린 공개 국무회의는 왜 유능한 지방자치단체장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보여주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에 들어오는 민원들은 우리(국가 공무원)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정보의 보물 창고다. 민원에 관심을 갖고 기존과 다른 방법을 찾아 개선하면 국민의 삶이 나아진다. 이런 것을 찾아 개선 방안을 지시하되, 체크에 체크를 거듭해야 성과가 난다. 행정제재는 효과가 없으니 불법이익 추구 행위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되게 만들면 이런 행위는 없어진다. 우리는 초능력자가 아니니 작은 비정상적인 것을 찾아 끊임없이 정상으로 돌리면 큰 변화가 온다. 획기적 한 방은 없다.”
이 대통령의 경력은 한국의 정치 지형을 바꾸었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고 광역단체장 선거에 뛰어든 정치인들이 많아졌다. 국회의원이 전문 지식을 활용해 법을 만들고 담론을 형성하는 언어를 무기로 하는 지도자라면, 지자체장은 예산을 집행하고 조직을 운영한 성과로 승부하는 지도자이다.
사회 변화를 이끄는 담론을 주도해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과 행정 능력을 겸비한 지도자는 많지 않다. 이 대통령은 시민병원 설립을 좌절시킨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분노로 성남시장에 도전했다. 성남시장으로 재임하면서도 SNS를 통해 담론을 주도했다. “기본사회”, “억울한 사람이 없는 공정사회”, “지방자치의 독립성”은 그가 시장시절에 제기한 담론이라면,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내세운 “공정성장”은 정당 대표로 그가 세운 새로운 국가 비전이었고, 이제 대통령으로서 실천 중이다.
이 대통령의 사례는 지방자치제가 국가 지도자의 역량을 검증하는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세금이 아깝지 않은 생각이 드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유능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들 중 괄목할 만한 성과를 입증한 지도자가 또 다른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