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장기' 취급된 흉선의 대반전: 수명·암 치료 좌우하는 열쇠
미국 매스 제너럴 브리검 연구팀, AI로 CT 2만7000장 분석
흉선 건강할수록 사망 위험 50%, 심혈관 질환 63% 급감
면역항암제 효능도 좌우, 학계 수십 년 묵은 상식 뒤집어
2026-06-05 08:52:25 2026-06-05 11:11:49
‘퇴화 장기’로 여겨졌던 흉선의 중요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사진=챗-GPT 생성)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사춘기 이후 급격히 위축돼 성인이 되면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퇴화 장기'로 여겨졌던 흉선(가슴샘, thymus)이 사람의 건강 수명과 암 생존율을 예측하는 가장 강력한 '숨은 지표'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인공지능을 동원한 대규모 추적 관찰을 통해 그간 학계가 간과해 온 흉선의 치명적 중요성을 입증한 것으로, 인간의 노화 정복과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놀라운 발견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따르면, 미국 하버드 의대 산하 최대 의료 시스템인 매스 제너럴 브리검(Mass General Brigham) 연구팀은 AI 분석 기술을 활용해 성인 수만 명의 흉선 상태를 추적 조사한 결과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를 두 편의 논문으로 나눠 네이처 동일호에 동시 게재했습니다.
 
퇴화한 장기? 수명 늘리는 '면역의 사령탑'
 
가슴뼈 뒤쪽에 위치한 흉선은 본래 면역계의 핵심 병기인 'T세포'를 훈련시키고 길러내는 기관입니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 크기가 급격히 줄어들며 상당 부분 지방 조직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의학계에서는 성인 흉선의 역할을 사실상 미미한 것으로 간주해 왔습니다. 그간의 면역학 연구 역시 주로 채혈을 통한 혈액 분석에만 머물렀습니다.
 
연구팀은 발상을 전환했습니다. 미 국립 폐암 선별 검사에 참여한 성인 2만5000여명과 프레이밍햄 심장 연구(Framingham Heart Study)에 참여한 건강한 성인 2500여명의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 영상을 통째로 분석한 것입니다. 여기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의료용 AI를 투입해 흉선의 크기, 구조, 지방 침착도 등을 정밀 측정하고 이를 ‘흉선 건강 점수’로 계량화했습니다.
 
결과는 가히 놀라웠습니다. 나이·기저질환 등 다른 변수를 모두 보정하고도, 흉선 건강 점수가 높은 이들은 점수가 낮은 이들에 비해 전체 사망 위험이 50%나 낮았습니다. 질환별로는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63% 감소했고, 폐암 발생 위험은 36%나 뚝 떨어졌습니다.
 
연구를 총괄한 후고 에이츠(Hugo Aerts) 매스 제너럴 브리검 AI 의학 프로그램 소장은 사이언스 데일리(Science Daily)와의 인터뷰에서 "흉선은 수십 년간 의학계에서 방치되어 온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었다"라며 "사람마다 노화의 속도가 왜 다른지, 왜 특정 환자에게서만 암 치료가 실패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라고 강조했습니다.
 
0.1% 희망 면역항암제, '흉선'에 길 있었다
 
흉선의 위력은 현대 의학의 최첨단 영역인 '면역항암치료'에서도 고스란히 증명됐습니다. 연구팀이 면역항암제 치료를 받은 암 환자 1200여 명의 CT 영상을 추가로 추적한 결과, 흉선이 건강한 환자들은 그렇지 못한 환자들에 비해 암이 진행되거나 악화할 위험이 37% 낮았고, 사망 위험은 44%나 감소했습니다. 환자의 나이나 종양의 특성, 치료 방식의 차이를 완전히 배제하더라도 흉선의 건강 상태가 면역치료의 성패를 가르는 독자적인 변수로 작용한 것입니다.
 
학계는 흉선이 노화로 약화되면 T세포의 '다양성'이 급감하면서, 암세포나 새로운 바이러스 같은 외부의 적을 식별하는 면역계의 센서 자체가 고장 나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흉선의 기능을 망가뜨리는 주범들도 명확히 규명됐습니다. 만성 염증, 흡연, 그리고 높은 체중(비만)이 흉선 건강을 악화시키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조사됐습니다. 일상적인 생활 습관과 신체 염증 관리가 면역 보루인 흉선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료계 "건강검진 패러다임 바뀔 수도"
 
다만 연구팀은 이번에 활용된 AI 기반 흉선 측정 기술이 아직 일반 병원에서 곧바로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니며, 향후 추가적인 임상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현재 연구팀은 폐암 방사선 치료 과정에서 흉선이 의도치 않게 방사선에 노출될 경우 환자의 예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의학계는 이번 연구가 향후 성인 건강검진에서 '흉선 모니터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에이츠 소장은 "흉선의 건강 상태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면, 의사들이 환자 개인의 잠재적 질병 위험을 훨씬 정확히 예측하고 맞춤형 암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매스 제너럴 브리검(Mass General Brigham) 연구팀 흉선 연구의 실제 코호트 및 연구 설계 개요(사진=Nature)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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