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통의 첫 번째 기능은 판매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다. 생산자의 제품과 서비스를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흐름을 만드는 일이다. 또 다른 기능은 소비자의 복지 확보다. 소비자가 다양한 상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소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이 두 가지 기능을 함께 생각하다 보면 유통에 대한 흔한 오해가 생긴다. 유통은 “생산자로부터 비싸게 사서 소비자에게 싸게 파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일부 경우에는 맞는 말일 수 있다. 공공성을 가진 농수산물 유통기관은 생산자를 보호하면서도 소비자 물가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대형마트 역시 특정 시기에는 생산자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거나 소비자 판촉을 위해 낮은 가격 정책을 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유통의 본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통마진이 확보되지 않는 사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가격 경쟁만으로는 결국 저마진과 저품질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통의 진정한 기능은 무엇일까?
얼마 전 한 유통업체 대표에게 현역 MD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2013년, 대형마트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위축된 수산물 소비를 되살리고 새로운 수요를 만들기 위해 활랍스터 직수입에 나섰다. 당시 랍스터는 고급 식재료라는 인식이 강했고, 가정에서 즐기는 음식으로는 낯선 상품이었다. 한 업체는 연간 활랍스터 총취급고가 2억원에 불과하던 상황에서 10억원을 들여 10만마리를 수입해 오는 모험을 진행했다. 일주일 내에 완판되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져, 쪄서 자숙 랍스터로 가공 판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패하면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했다. 살아 있는 상태로 유통해야 했고, 짧은 시간 안에 판매하지 못하면 상품 가치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마리당 98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된 랍스터는 전국 매장마다 긴 구매 행렬을 만들었고 결국 완판됐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판매량이 아니다. 그날 저녁 소비자들의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는 것이다. 가족들은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식재료를 함께 요리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유통이 판매한 것은 단순한 랍스터가 아니었다. 가족이 함께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 기회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 한 유통업체 대표에게 선물 상자를 받은 적이 있었다. 상자 안에는 세숫대야 크기의 즉석냉면과 8인분 비빔면, 8인분 즉석라면이 들어 있었다. 식구가 많지 않았던 나는 다소 난감했지만 감사의 뜻으로 “맛있게 먹겠습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자 뜻밖의 답장이 돌아왔다. “맛있게 드시라고 보낸 것이 아닙니다.” 순간 의아했지만 곧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상품은 혼자 먹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먹고,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도록 만든 상품이었다. 그 상품이 판매한 것은 면이 아니라 만남이었고, 음식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나는 생각을 고쳐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 즐거운 추억을 만들라는 것이지요?”라고 답장할 수 있었다.
유통은 상품을 배송하는 산업이 아니라 경험을 배송하는 산업이다. (이미지=챗GPT)
유통의 진정한 기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유통은 새로운 상품을 소개하고, 새로운 소비 경험을 제안하며, 새로운 생활 방식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제공하는 경험과 의미를 소비한다. 유통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을 조금씩 바꾸고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유통은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팔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하려면 기존 상품 흐름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새로운 상품 구성을 제안하고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저가 저품질 유통이 유통의 본령인 것처럼, 가격경쟁만이 유일한 경쟁의 차원인 것처럼 느껴질 때, 유통의 진정한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면 새로운 메뉴를 가족들과 시도해 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추억을 쌓아가야겠다.
이동일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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