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한반도 내륙으로 찾아온 숲 속의 보석, 흰눈썹황금새
2026-06-19 09:17:16 2026-06-19 09:17:16
눈 위에 하얀 눈썹선이 선명하고, 가슴과 배는 눈이 부실 정도로 노란 황금빛을 띤 새. 바로 이름도 직관적인 여름 철새 '흰눈썹황금새(Tricolor Flycatcher)'입니다. 한 번 보면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새는 사실 예전만 해도 아무나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흰눈썹황금새 한쌍이 미사리조정경기장 숲에서 먹이를 사냥해 둥지로 날아가고 있다.
 
40년 전쯤만 하더라도 흰눈썹황금새는 남서해안의 외딴섬이나 제주도 깊은 숲 속에서나 겨우 번식이 확인되던, 그야말로 '보기 드문 귀한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아주 흥미로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 녀석들이 한반도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당당하게 둥지를 틀기 시작한 겁니다.
 
실제로 필자가 현장을 누비며 목격한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올해 하남 미사리 경기장 옆 호젓한 숲에서도, 경안천 생태공원에서도 새끼를 키워내는 개체들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포천 지장산 자락의 조용한 암자인 도연암에서도 한 쌍이 번식에 멋지게 성공했지요. 심지어 인천대공원이나 가평 남이섬처럼 주말이면 수많은 나들이객이 몰려드는 복잡한 공원 한복판에서도 당당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개체 수가 늘어난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도대체 왜 갑자기 내륙으로 올라오는 걸까?"라는 걱정 섞인 의문이 동시에 듭니다.
 
비밀을 풀기 전에 먼저 이들의 독특한 외모와 생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흰눈썹황금새는 암수의 외모가 완전히 다른 '성적 이형'을 아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수컷은 머리부터 등, 꼬리까지는 아주 짙은 검은색인데 가슴과 배는 샛노란 황금색으로 강렬한 대비를 이룹니다. 여기에 눈 위의 선명한 흰 눈썹선이 화려함의 정점을 찍습니다. 반면 암컷은 전체적으로 녹색 기운이 도는 황갈색 옷을 입고 있으며 수컷의 상징인 흰 눈썹선도 거의 없습니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동안 천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변 나뭇잎과 구별되지 않는 완벽한 보호색을 택한 생존 전략입니다.
 
이들이 한국을 찾는 건 딱 신혼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매년 5월에 찾아와 7월 초까지 바쁘게 번식기를 보냅니다. 주로 오목한 나무 구멍이나 딱따구리가 쓰고 버린 둥지에 자리를 잡고 4~6마리의 알을 낳습니다. 최근에는 조류애호가와 단체들이 곳곳에 달아놓은 인공둥지를 잘 이용합니다. 암컷이 알을 품는 기간은 9~12일 정도 걸리며, 새끼들이 부화하면 이때부터 화려한 수컷도 완벽한 '살림꾼 아빠'로 변신해 암수가 쉴 새 없이 교대로 먹이를 나릅니다.
 
필자가 관찰해보니, 이 작은 부부가 하루에 물어오는 곤충의 양이 무려 400~500여 마리에 달했습니다. 십여 분에 한 번꼴로 날아오는 눈물겨운 부성애와 모성애입니다. 새끼들은 그렇게 지극한 정성 속에서 약 2주간 둥지에 머물다가 어미를 따라 밖으로 떠납니다. 둥지를 떠났다고 끝이 아닙니다. 한동안 근처에 머물며 사냥 기술을 배우고 홀로서기를 할 때까지 어미들은 계속 먹이를 잡아다 줍니다. 그리고 찬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그해 태어난 어린 새들을 데리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남아시아로 기나긴 여정을 다시 떠나게 됩니다.
 
흰눈썹황금새 수컷이 거미를 사냥해 둥지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과거 섬 지역에서만 간간이 보이던 새들이 이제는 경기도 내륙 깊은 공원까지 점령하게 되었을까요? 조류학계에서는 이를 한반도의 '기후변화(지구온난화)'를 보여주는 명확한 생태학적 지표로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내륙의 봄·여름 기온이 이들이 번식하기에 다소 서늘했지만, 최근 수십 년간 평균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내륙의 생태 환경이 이들이 원래 번식하던 남쪽 섬이나 아열대 기후와 비슷해진 것입니다. 새들에게 한반도 내륙이 "이제 아이 키우기 딱 좋은 날씨"로 바뀐 셈입니다.
 
개체 수가 늘어 우리 눈에 자주 띄는 건 참 즐거운 일이지만, 기후위기의 경고장 같아서 마음이 아주 가볍지 않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봄철 기온이 너무 일찍 올라가면 곤충이 부화하는 시기와 새들이 찾아와 새끼를 부화시키는 시기의 타이밍이 어긋나는 생태적 불일치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들이 우리 숲에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큽니다. 최근 이상고온으로 인해 도심과 숲에 돌발 해충이나 나방 애벌레 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골치를 썩이고 있지요? 흰눈썹황금새들이 늘어나면 숲의 늘어난 곤충들을 적절히 구제해 주는 천연 방역 요원 역할을 톡톡히 해내게 됩니다. 해로운 화학 살충제 없이도 자연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힘이 되어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올해 무사히 번식에 성공한 흰눈썹황금새 가족들이 다가오는 가을에도 험난한 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남쪽 나라에서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더 많은 식구를 늘려 우리 곁을 다시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찬란한 황금빛 노래와 함께 해충을 구제해 주는 고마운 선물을 들고 말입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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