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대성 기자] 도입된 지 채 반년이 되지 않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가 '교육자료'로 강등되면서 현장 혼란과 업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업계는 국민 세금과 함께 투입된 약 수천억원의 개발비가 물거품이 될 위기라며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과 헌법소원 제기까지 불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회를 통과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따라 AIDT는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분류됐습니다. 이에 따라 전국 교육청이나 학교장의 결정에 따라 AIDT 활용 여부가 달라지면서 교사들과 학생들이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각 학교가 향후 AIDT 구독료를 직접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기존에는 교육청 예산으로 일부 대납이 가능했지만, 법정 교과서 지위를 상실하면서 국가 예산 지원의 근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현재 32% 수준인 AIDT 채택률은 앞으로 더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또 바뀌었어요"…정책 혼선에 지친 교사들
AIDT를 직접 수업에 활용해온 교사들은 정책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을 담당하는 특수학교 교사 A씨는 "AIDT의 텍스트 음성 변환과 글자 확대 기능 등을 활용해왔다"며 "이런 기능 덕분에 시각장애 학생들도 교과 내용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었는데, 이제 이 교과서가 일반 자료로 격하된다는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수학 교사 B씨도 "수준 차이가 큰 학급에서 AIDT는 개인 맞춤 콘텐츠와 피드백 기능 덕분에 맞춤 수업을 가능하게 해줬다"며 "현장에서는 만족하며 활용하고 있었는데 정책이 너무 쉽게 바뀐다"고 지적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지도하는 C 교사는 "AIDT의 번역 기능 덕분에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수업에 더 잘 적응했다"며 "이제 막 적응되던 시스템이 또 바뀌니 현장은 지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학부모 단체 '학사모'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집히는 탓에 교사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교육정책은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이 핵심인데 하루아침에 바뀌는 지금의 상황을 교사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습니다.
AIDT 업계와 교과서발전위원회는 지난달 2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사진=신대성 기자)
발행사 "정부 못 믿겠다"…헌법소원 준비
AIDT를 개발해온 발행사들은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무너졌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발행 예정사 21곳은 약 8000억원을 투입해 콘텐츠를 개발했지만 교과서 지위가 박탈되면서 사실상 투자 회수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미 천재교과서, 천재교육, YBM 등은 지난 4월 교육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정부가 갑작스럽게 AIDT 도입을 '학교 자율'로 전환하면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번 개정으로 AIDT의 법적 지위 자체가 사라지면서 더 많은 발행사들이 소송에 참여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발행사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변경으로 인한 피해가 명확한 만큼, 헌법소원·행정소송·민사소송 등 모든 법적 절차를 검토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박정과 천재교과서 대표는 "전체 AI 디지털 교과서 발행사는 18개이며, 에듀테크사까지 포함해 긴급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면서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대규모 구조조정 우려에 업계 종사자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단 지적입니다. 황근식 교과서발전위원회 위원장은 "AIDT 사업을 접게 되면 약 1만명에 달하는 종사자와 그 가족들의 생계가 벼랑 끝에 내몰리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소외계층 직격탄 우려
현장에서는 특히 장애 학생과 소외계층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AIDT 전체 예산의 30% 이상이 시각·청각 장애 학생들을 포함한 소외계층 대상 콘텐츠 개발에 투입했습니다.
황 위원장은 "시·청각 장애 학생 등 소외계층을 위해 공교육 체계에 맞춰 개발한 콘텐츠와 시스템이 폐기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이 될 것"이라며 "공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번 결정으로 인해 예산 여력이 부족한 학교들은 AIDT 도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어 지역 및 계층 간 격차 확대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수익성이 낮은 분야에 대한 교육업체들의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도 커 결국 교육 사각지대가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황근식 교과서발전위원회 위원장과 에듀테크 및 발행사 임직원들이 지난달 21일 총궐기 대회에 참여했다. (사진=신대성 기자)
신대성 기자 ston947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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