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늘어난 미국의 아동 1000명당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유병률. (사진=statista)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지난 4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자폐증은 환경 독소로 인한 대유행(epidemic)”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미국 내 자폐 아동 유병률이 2000년 150명 중 1명에서 2022년 31명 중 1명으로 급증했다고 지적하며, 조만간 원인을 특정할 연구를 시작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나 과학계 반응은 싸늘하다는 것이 다수 언론의 보도입니다. 이미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에 따르면, 자폐증의 주된 원인은 유전적 요인이며 환경적 요인은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발표한 ‘자폐 데이터 과학 이니셔티브(ADSI)’에 5000만달러를 투입한다고 했지만, 학계는 “기존 연구 성과를 무시한 정치적 접근”이라고 우려를 표명합니다. 이런 ‘자폐증 증가’ 현상과 그 원인을 둘러싼 논란을 집중적으로 다룬 8월26일 네이처 뉴스(Nature News)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이 기사 내용 중에도 언급된 우리나라의 상황도 진단해봅니다.
증가 원인은 ‘진짜 유병률’이 아니라 ‘진단율’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스벤 뵐테(Sven Bölte) 교수는 네이처(Nature)와의 인터뷰에서 “자폐증 유행이 아니라, ‘진단의 유행’이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실제로 미국·영국·덴마크·한국 등 선진국에서 자폐 아동 수치가 급등했지만, 이는 진단 기준 확대(DSM·ICD 개정)와 인식 제고, 조기 검진 활성화가 주된 배경이라는 설명입니다.
예컨대 DSM-III(1980년대)에서는 유아기에 특정 증상을 충족해야만 자폐로 인정했지만, DSM-IV(1994)와 ICD-10(1990)은 범위를 넓혀 더 많은 아동과 성인에게 진단을 적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2013년 DSM-V는 아스퍼거 증후군까지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로 통합했습니다. 이로써 통계상 자폐증은 급격히 증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단 체계와 사회적 수용성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입니다.
유전의 힘, 80% 이상의 설명력
덴마크·미국 등 5개국 연구에 따르면 자폐증의 유전력(heredity)은 약 80%로, 키 유전율과 비슷하다. 일부 환자(10~20%)는 드 노보 돌연변이 같은 희귀 변이에서 비롯되며, 나머지는 수백수천 개의 미세한 유전자 변이가 누적돼 발현합니다.
이렇듯 환경 요인은 ‘부차적 요인’으로 꼽힙니다. 대표적인 것은 부모 고령 출산, 임신 중 감염·오염물질 노출, 임신부의 당뇨·비만, 엽산 결핍 등이지만 연구 결과는 엇갈립니다. 특히 케네디 장관이 언급한 ‘백신’은 수십 차례의 대규모 연구에서 이미 관련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가 주장한 환경적 요인과 상관없는 유전적 요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연구에서 주로 임신 중에 노출되는 몇 가지 환경적 요인과 자폐증 발병 위험 증가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했으나, 그 정확한 역할은 규명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연구 결과 자폐증의 원인은 지독히 복잡하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대학에서 신경발달 장애를 연구하는 헬렌 테이거-플러스버그(Helen Tager-Flusberg)는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자폐증의 원인에 대한 간결한 답변은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사자 모욕 발언에 커지는 반발
케네디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 아이들은 세금을 내지도, 직업을 갖지도 못한다”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자폐과학재단(Autism Science Foundation)의 알리시아 할러데이(Alycia Halladay) 과학책임자는 “많은 자폐인은 직업을 가지고 세금을 내고 있으며, 이런 발언은 자폐인의 가치를 깎아내린 모욕”이라고 반박합니다. 실제로 자폐 스펙트럼은 다양해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자폐인 당사자와 단체들은 원인 규명보다 정신건강, 교육 지원, 사회적 포용을 연구 우선순위로 꼽고 있습니다.
한국의 추정 유병률 약 2.2%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1년 경기 고양시 초등생 전수조사에서는 유병률 2.64%(1/38)가 산출됐습니다. 이것은 미진단 사례까지 집중적으로 찾아낸 결과로, “진짜 환자 수가 급증했다기보다 발견·진단이 촘촘해진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반면, 건강보험 청구 자료로 출생 코호트를 따라가본 전국 연구에서는 2012년생을 8세까지 추적했을 때 9.4명/1000명(0.94%)이 ASD 진단을 받았습니다. 남녀 격차는 남아가 여아보다 약 2.6~2.7배 높음으로 나타났고, ASD 아동의 전체 사망 위험은 비ASD 아동 대비 높았습니다. 전수조사(높은 수치)와 행정 자료(낮은 수치)의 차이는 탐지 방식·기준의 차이를 시사합니다. 이렇듯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데이터에서도 남녀 격차와 조기 진단 확대가 일관되게 관찰됩니다.
2011~2021년 전국 아동(2~18세) 건강보험 통계를 보면, 한국의 ASD 진단율은 지속적으로 상승, 특히 코로나19(2020~2021) 기간에 유의한 증가가 관찰됐고, 유아(2~5세)에서 상승폭이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미국·유럽과 유사하게 조기 선별·인식 제고·지원 연계 확대의 영향으로 해석됩니다. 참고로 국내 임상진료지침(2024)은 최신 DSM-5 기준을 근거로 한국의 추정 유병률 약 2.2%를 인용하며, 국가 간·연구 간 방법 차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국내의 전국 시간 계열 연구에서 단기 PM2.5·NO₂·O₃ 노출 증가와 ASD 입원 위험 증가의 관련성이 관찰됐습니다. 또 2024년 국내 연구는 소아·청소년 정신질환 부담 중 일부가 PM10·PM2.5·SO₂에 기인한다고 추정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공기질은 기여 요인일 수 있으나 ‘단일 원인’로 보기엔 부족합니다.
약물·감염 등 산전 요인과 관련한 전국 출생 코호트(국민건강보험 모자 연계)를 이용한 BMJ 2024 연구는 임신 중·영아기 초기 항생제 노출과 ASD 위험 간 유의한 연관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특정 단일 환경 독소” 가설에 브레이크를 거는 데이터가 한국에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 진료 지침과 국제 대규모 연구가 일치되게 높은 유전 기여(약 80%)와 복합적 유전변이의 누적 효과를 공통적으로 강조합니다.
연구비 삭감이라는 더 큰 위기
미국에서의 자폐 인구 증가 논란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연구비 삭감도 문제도 지적되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NIH의 자폐 연구 예산은 2억7400만 달러에서 2억1200만달러로 전년 대비 6200만달러 감소했습니다. 전문가들은 “ADSI의 5000만달러 투자로는 연구 인프라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자폐증은 ‘단일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한 신경발달 상태입니다. 유전과 환경, 사회적 인식이 교차하는 다층적 현상이며, ‘무엇이 원인인가’라는 질문에 단순한 답을 기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네이처는 과학계와 자폐인 공동체의 목소리를 모아 “정치적 언어와 음모론은 자폐 연구를 퇴행시키고, 당사자의 삶을 해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인 규명보다 자폐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적 지원과 장기적 연구 투자”라고 강조합니다.
연구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5-02636-1
201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 18세 이하 아동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유병률 시간 경과 추이. 각 연령대별 ASD 유병률 변화는 전체(2~18세), 2~5세, 6~12세, 13~18세에서 관찰되었다. (사진=Annals of Child Neurology)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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