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안구건조증 치료를 받으면 피부 관리를 서비스로 해준다는 병원의 말을 믿고 치료 후 실손의료보험을 청구한 환자 280여명이 '보험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걸로 확인됐습니다. 미용 목적으로 피부 관리를 받고 그 비용을 보험금으로 청구·수령했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환자들은 '병원 측 말을 듣고 따랐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14일 <뉴스토마토> 취재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은 지난달 28일 강남 A안과 병원장과 A안과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 280여명에게 '보험사기방지 특별법'(보험사기방지법)과 의료법 등을 위반한 혐의를 적용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로 넘겼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보험사기방지법 제8조(보험사기죄)를 위반한 혐의를 받습니다. 이 조항에 의하면, 보험사기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자 또는 보험사기행위를 알선·유인·권유·광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2016년 11월10일 전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직원들이 공업사 대표와 보험사 직원 등 47명이 연루된 20억원 상당의 보험사기를 적발하고 관련 증거물을 분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해당 사진의 내용은 본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2022년 개원한 강남 A안과는 이듬해 안구건조증 치료(IPL 레이저 치료)와 피부 관리를 패키지로 묶어 판매했습니다. 환자에게 안구건조증 치료를 받으면 피부 리프팅·톤업 시술 등 피부 관리도 해준다고 한 겁니다. 1회당 20만원 상당의 상품인데, 환자들에겐 10회씩(200만원) 묶어 판매됐습니다. 200만원을 한꺼번에 결제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환자들에게는 실손보험 청구가 가능하다고 달래면서 결제를 유도했다고 합니다.
A안과가 영업을 하는 과정에는 다단계 화장품 판매 업체 B사의 프리랜서 노동자도 동원됐습니다. B사 프리랜서 노동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해당 상품을 홍보했고 병원으로 환자를 연결해줬습니다.
졸지에 보험사기 사건의 피의자가 된 환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C씨는 2023년 무렵 지인을 통해 해당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선 그해 8월 A안과를 찾아 'A안과 이사'와 상담을 진행했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간 C씨가 A안과 이사라고 알고 있던 이는 바로 화장품 판매 업체 B사의 프리랜서 노동자였습니다.
C씨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병원에 처음 갔을 때 A안과 이사가 '안구건조증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느냐. 그러면 안구건조증 치료가 실비보험 청구가 된다'라고 밀했다"면서 "'보험 청구가 가능하니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C씨는 10년 넘게 렌즈를 꼈던 탓에 안구건조증을 치료를 받았던 전력도 있었습니다. C씨로선 어차피 안구건조증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거기에 피부 관리까지 서비스로 해준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올해 4월 경찰은 C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했습니다. C씨가 보험사기를 저지르고 의료법을 위반했다는 겁니다. C씨는 "처음부터 피부 관리를 받으려고 했다면 피부과를 가는 게 맞지 않겠느냐"며 "저는 당시 이미 다른 피부과를 다니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안구건조증 치료를 받으면 피부 관리를 해준다는 말을 듣고선 A안과의 상품을 결제한 것이지, 애초부터 피부과 시술을 목적으로 결제한 게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A안과의 피해자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도 C씨와 유사한 억울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D씨는 "(병원 측에서) 안구건조증 치료 패키지를 결제하고 나눠서 실비 처리를 하면 된다고 말하길래 치료비를 달마다 실비로 처리했던 것"이라며 "(병원이) 환자들한테 거짓말을 하고 말로 유인해서 (보험제도를) 악용하게 만든 것인데, (경찰은 내가) 피의자 신분으로 보험사기를 친 것이라고 하니까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전국 최대 지방경찰청인 서울경찰청 외관. (사진=연합뉴스)
경찰 광역수사단 관계자는 "(A안과 사건은) 근거 자료가 있기 때문에 검찰로 송치한 것"이라며 "(병원을) 압수수색했을 때 병원 자체가 그런 병원이고, 환자들도 그걸 알면서도 (보험을 청구)한 구조라서 환자도 송치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병원을 압수수색해 얻은 환자 개인별 진료기록 등을 근거로 환자까지 보험사기 혐의를 적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이에 대해 장휘일 더신사 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누가 대놓고 '실손보험으로 피부 미용을 받아야지'라고 생각하겠느냐"며 "환자가 의도를 가지고 사기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병원 정책, 설명 부족, 보험 서류 처리 방식 때문에 억울하게 (사기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최진홍 법무법인YK 변호사도 "(경찰이) 피의자 개인별로 진술과 증거를 수집해 송치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라며 "그런데 '브로커'가 개입돼 다수 관련자의 사실관계가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엔 인적·물적 한계를 갖는 수사 현실에 비추어 기소까지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원론적인 말이지만, 수사기관은 느리더라도 개별 사실관계를 세세히 조사하고 추려서 실제 범의를 입증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만 송치 및 공소제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A안과는 현재 이름을 바꿔 달고선 아직도 운영 중입니다. A안과 측은 <뉴스토마토>가 반론과 입장을 요청하자 "조사 단계에 있는 중이라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환자들을 A안과에 연계해준 B화장품 판매 업체 프리랜서 노동자는 "병원 측에서 지시한 대로만 했고, 그렇게 진행하다 이렇게 됐다"며 "병원과 뒷거래도 없었고 병원이 B사 제품을 써준 것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A안과가) '고객관리를 하면 화장품 영업 때 같이 영업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해서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