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야간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뇌심혈관 질환뿐 아니라 만성피로와 수면장애로 인한 우울증 같은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사고성 재해나 교통사고 등의 산업재해 위험도 현저하게 높이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야간노동으로 인한 생체리듬 교란’을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하며 위험성을 경고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해외 국가들과 달리, 현재 국내에선 이를 규제할 만한 마땅한 규정이 없는 실정입니다. 근로기준법상 여성과 미성년자 등에 대한 노동시간 제약이 있고,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야간노동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 제도를 시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것 외엔 별도의 규제가 없는 겁니다.
근로기준법 제70조(야간근로와 휴일근로의 제한) 1항은 ‘사용자는 18세 이상의 여성을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려면 그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제70조 2항에서는 ‘사용자는 임산부와 18세 미만자를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및 휴일에 근로시키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근로기준법에선 야간노동에 대해 가산수당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제56조(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 1항에는 ‘사용자는 연장근로에 대해서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한다’라고 규정됐습니다. 이마저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닌 택배기사 등의 특수고용직에겐 해당되지 않습니다. 아울러 가산수당은 저임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노동자로 하여금 오히려 야간노동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유청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은 “법에서 건강을 보장하지 않고 수당을 지급하거나 건당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는 현실에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은 야간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교대제 야간노동도 몸에 유해한데, 야간노동을 고정으로 하고 노동의 강도도 세고 쉬는 날도 보장되지 않는 물류센터와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건강이 더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병덕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이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제주 쿠팡 새벽배송 희생자 고 오승용 유족·원내 제정당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반면 해외 국가와 국제기구들은 야간노동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불가피한 경우 노동자 건강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규제 방안까지 마련하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171호는 △야간노동자에게 무상 건강진단 제공(4조) △야간노동 응급조치와 치료체계 마련(5조) △건강상 야간노동이 불가능한 경우 직무 전환 및 보상(6조) △노동자 대표와 정기적 협의(11조) 등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협약과 함께 채택된 ILO 권고 178호에 따르면, 야간노동은 하루 8시간을 초과하지 않고, 주간노동보다 짧거나 같도록, 위험하거나 부담이 큰 직종에선 연장 야간노동을 금지했습니다. 또 교대 근무 사이에는 최소 11시간의 휴식을 보장하며, 야간노동 중엔 휴식과 식사시간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7월 발행한 ‘취약 근로자(야간노동자) 보호를 위한 연구’ 보고서의 해외 사례를 보면, 프랑스는 법으로 야간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야간노동이 필요할 경우에는 경제활동의 연속성 또는 공익적 목적이 증명돼야 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또 야간노동은 최대 주당 40시간으로 제한했습니다.
핀란드의 경우, 야간노동이 허용되는 업종과 작업을 특정하고 교대근무제 방식까지 명시했습니다. 네덜란드 역시 야간노동의 횟수나 휴식시간 등의 규제 조항을 뒀습니다. 독일은 가정에서 돌봐야 할 12세 미만의 자녀가 있거나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이 있는 경우엔 노동자 요구에 따라 주간으로 근무를 전환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규정까지 정하고 있습니다.
해외엔 점포 영업시간 규제도 있습니다. 독일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영업시간을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로 정하고 있고, 덴마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5시까지 영업한 뒤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의무적으로 폐점해야 합니다. 호주도 주중 영업시간을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요일에는 의무 폐점 규정이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열린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SPC 임원들에게 사고 경위와 노동환경 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나라는 ILO 협약과 권고조차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실정입니다. 야간노동 규제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없다 보니 장시간 야간노동과 그에 따른 업종별 사고들도 만연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달 30일 이용우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야간(오후 10시~오전 6시)에 일하다 사망해 유족급여를 신청한 노동자는 총 1424명에 달했습니다.
야근노동 중 사망해 산재를 신청한 건 289명인데, 산재 승인은 220명(76.1%)입니다. 출퇴근 중 재해사망은 159명이고, 산재 승인은 112명(74.2%)입니다. 질병사망은 970명인데, 여기서 452명(46.6%)만 산재로 인정됐습니다. 과로사로 분류되는 뇌심혈관계 질병의 경우 사망자 414명 신청 중 산재로 받아들여진 건 183명(44.2%)입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월 SPC그룹을 방문, 이 회사 계열사들의 반복되는 산재 사고들에 대해 ‘장시간 야간노동’ 문제를 지적했고 대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습니다. 최근엔 ‘새벽배송 금지’ 논란으로 택배·물류 노동자의 노동환경 실태가 문제로 부각되는 중입니다. 이제라도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다는 지적입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의 모임인 ‘일터건강을 지키는 의사회'가 지난 13일 성명을 통해 야간노동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한 건 이런 맥락입니다. 이들은 △심야 비필수 야간노동의 단계적 감축 △3일 이상의 연속된 야간노동과 하루 8시간 이상의 야간노동 제한 △하루 11시간 이상의 연속된 휴게시간 보장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야간작업 특수건강진단과 사후관리 실시 등을 요구했습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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