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공항 바닥서 자고, 아침엔 유해 수습…600일째 무안공항 지키는 유족들
공항 2층 복도엔 쉘터 30여개…600일째 지내며 매일 유해 수색 참여
1년8개월 만에 돌아온 '추가 유해'…또 장례식, 정부선 안내도 없어
유족들 "수사·사고조사 아직 진행 중, 공항 재개 앞서 진상규명 먼저"
2026-08-17 13:59:40 2026-08-17 15:54:27
[전남 무안=뉴스토마토 남윤서 기자] 무안국제공항 2층 복도로 올라가면 쉘터 30여개가 길게 줄지어 선 풍경과 마주하게 됩니다. 문이 열린 쉘터가 있어서 슬쩍 안을 봤더니 차가운 바닥을 겨우 가린 얇은 매트와 이불, 손때 묻은 옷가지가 전부였습니다. 공항 대리석을 따라 이어진 쉘터들은 단순한 임시 숙소가 아닙니다. 2년 가까이 '제주항공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현장을 떠나지 못한 유족들이 겨우 삶을 버텨내는, 비통의 흔적이었습니다. 
 
참사 600일을 앞둔 지난 12일, <뉴스토마토>는 무안공항을 찾았습니다. 유족들은 1년8개월이라는 아득한 시간 동안 공항을 떠나지 못한 채 노숙에 가까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수습 현장으로 나가 발을 굴렀고, 저녁이 되면 돌아와 겨우 한 끼를 때우고 찬 바닥에 이불을 펴고 누웠습니다. 아직 수습되지 못한 가족의 유해가 여전히 캄캄한 흙 속에 묻혀 있는데,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참사 발생 후 이들의 시계는 쭉 사고 당일에 멈춰 선 셈입니다. 
 
지난 12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에 마련된 유족 쉘터 안에 얇은 매트와 이불이 깔려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수습 기다리며 600일…공항 2층이 생활공간
 
공항에 계속 상주하면서 쉘터를 지키는 유족은 7~8명입니다. 나머지 생업이 있는 사람은 주말마다 공항을 찾고, 집이 가까운 사람은 공항과 집을 오갑니다. 광주에서 온 김명필(70)씨는 한 번 공항에 들리면 4~5일씩 쉘터 신세를 진다고 합니다. 김씨는 "집에 있으면 수색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답답해 견딜 수가 없다"며 "차라리 공항에 있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다"고 했습니다. 
 
12일 오후, 공항 활주로에서 유해 수색을 마치고 돌아온 유족들은 쉘터 끝자락에 모여 앉았습니다. 요즘은 폭염 탓에 유해 수습은 오전 위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탁자엔 서로 챙겨 온 복숭아와 무화과, 수박, 빵 등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경임(65)씨가 옆자리 유족에게 "형부, 병원은 갔다 왔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곧 대장내시경을 받는 다른 유족의 안부를 묻는 겁니다. 이들은 서로의 이름이나 '씨'라는 호칭보다 '언니'나 '형부'라는 말이 더 편해진 듯 했습니다. 
 
이씨도 옆에 앉은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우리는 1년 넘게 여기서 살아서 이젠 가족처럼 돼버렸다"고 했습니다. 참사로 남편을 잃은 박귀숙(64)씨 역시 "공항 밖에선 유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친구들 전화도 안 받는다"면서도 "여기는 모두 같은 처지라 서로 웃고 떠들며, 심리적 치료에 의지해 겨우 버티고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지난 12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2층 유족 쉘터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탁자에 둘러앉아 과일을 나눠 먹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저녁이 되자 유족들은 전복과 생선을 손질해 생선조림과 회무침으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주변에 있던 유족들도 하나둘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씨는 "혼자 있으면 밥도 잘 안 넘어가지만, 같이 먹어야 서로를 챙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유족들은 트라우마가 심해 보였지만, 서로 챙겨주고 의지하면서 고통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쉘터로 돌아온 이들은 얇은 매트 위에 이불을 깔고 누웠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걸음 떨어진 에스컬레이터에선 밤에도 안내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흘러나왔고, 쉘터 안에서도 소음이 그대로 들렸습니다. 취재팀이 "이곳에서 잠을 자기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이씨는 "처음에는 바닥이 딱딱하고 시끄러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면서도 "집에 있으면 공항 상황이 궁금하니까 여기서 자는 게 마음은 더 편하다"고 말했습니다.
 
1년8개월 만에 또 장례…안 끝난 '유해 수습'
 
활주로 재수색 현장에선 참사 600일을 앞둔 지금도 유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에 따르면 지난 13일까지 재수색 대상 828개 구역 가운데 724개 구역에서 작업을 마쳤습니다. 수습 과정에서 유해로 추정되는 물체 1620점과 유류품 851점을 추가로 찾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유족들은 매일 아침마다 유해 수습 상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미 장례를 치른 희생자의 유해가 추가로 나오면서, 참사 1년8개월 만에 가족의 장례를 다시 치러야 하는 참담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목이 멘 채 " 1년8개월간 장례조차 마치지 못했고 장례에 대한 어떤 안내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며 "다시 장례를 치르는 것도 너무 참담하다"고 했습니다. 
 
지난 12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이 재수색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집에 가고 싶다"…600일째 '진상규명 요구'

유해 수습이 길어지면서 공항 주변엔 무안공항 재개항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일각에선 유족들이 공항 재개항을 막고 있다는 오해 어린 시선까지 보낼 정도입니다. 이에 대해 유족 A씨는 "우리가 떼를 쓰며 재개항을 막는 게 아니다. 유해가 다 수습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공항 문을 열 수 없는 것"이라며 답답해했습니다.
 
사고 조사를 맡은 항철위도 아직 최종 결과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독립성 논란이 일었던 항철위를 지난 2월 국토부에서 국무총리 소속으로 옮겼고, 지난달 새 위원장까지 취임했습니다.
 
지난 13일 현장을 찾은 한성숙 국무총리에게 유족들은 △총리의 진상규명 및 수습 약속 △조속한 사고 조사 정상화 △부실 수습 사과 및 책임자 문책 등 5대 요구안을 전달했습니다. 한 총리는 "진실 규명과 유가족의 아픔을 챙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으나, 정부에선 아직 구체적인 이행 일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유진 대표는 "정부의 추상적인 위로가 아니라 유족이 요구한 사항에 대해 명확한 이행 계획과 국가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청한다"면서 "참사로부터 1년8개월이 흘렀지만 왜 179명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책임지거나 처벌받은 사람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유족 B씨도 "우리 역시 집에 가고 싶다. 유해를 '100% 찾는다'는 개념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참사에 대해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벌받을 사람이 처벌받아야 돌아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남 무안=남윤서 기자 nyyyse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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