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K석화②)(단독)돈줄 마르자 곳간 털어...노후 설비 ‘아슬’
설비 차입금 1년 새 62.8% 급감
내부자금 의존도, 83.7% 치솟아
1970년대 가동 노후 설비 수두룩
2026-08-24 10:14:32 2026-08-24 14:22:37
[뉴스토마토 윤영혜 기자]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생존을 위한 사업 재편에 나섰지만, 정작 설비 경쟁력을 지탱할 ‘투자금’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은행 차입과 회사채 등 외부 자금 조달이 급격히 줄면서 기업들은 자체 자금으로 버티고 있지만, 유지보수와 자동화 투자까지 줄어드는 모습입니다. 군살은 빼되 고부가 전환을 위한 새 판을 짜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노후 설비의 안전과 경쟁력 저하를 끌어안은 진퇴양난의 형국입니다.
 
(표=챗GPT)
 
24일 한국화학산업협회가 발간한 ‘2026 석유화학 편람’에 실린 한국산업은행의 ‘설비투자계획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석화업계의 설비투자용 은행 차입금은 1조4201억원으로 이전해 3조8141억원보다 62.8% 급감했습니다. 2023년 5조4092억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약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2026년 예상치 역시 1조5905억원에 머물러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전망입니다.
 
은행뿐 아니라 외부자금 조달 전반이 위축됐습니다. 외부자금은 2024년 4조1053억원에서 지난해 1조7027억원으로 58.5% 감소했으며, 2026년 예상치도 1조8684억원에 그쳤습니다. 지난해 회사채 발행을 통한 조달도 1928억원에 머물렀고 올해 기대치도 1804억원입니다.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2022년 이후 5년 연속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빈자리는 고스란히 기업 곳간이 메웠습니다. 지난해 석화업계의 내부자금은 8조7522억원으로 전체 설비투자액 10조4549억원의 83.7%를 차지했습니다. 2023년 내부자금 비중이 51.7%였던 것과 비교하면 2년 만에 32%포인트 높아졌습니다. 2026년 역시 전체 투자액 10조837억원의 81.4%에 달하는 8조2151억원을 내부자금으로 충당할 전망입니다. 벌어놓은 돈을 헐어 투자를 이어가는 구조로, 실적이 꺾이면 곧바로 투자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유지보수와 자동화 등 설비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는 줄었습니다. 유지보수 투자는 2023년 4조5098억원에서 지속 감소해 올해는 3조3383억원으로 26% 줄어들 전망입니다. 자동화 투자 역시 2024년 721억원에서 지난해 142억원으로 80% 급감했고, 2026년 예상치도 164억원 수준입니다.
 
한화솔루션 울산 공장. (사진=한화솔루션)
 
업황 지표는 이미 바닥입니다. 지난해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가동률지수는 86.8로 2023년 최저점인 87.4를 밑돌았습니다. 제조업 평균 101.7과의 격차는 14.9포인트에 달했습니다. 합성고무 및 플라스틱 가동률지수 역시 84.4로 낮아졌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합성고무 및 플라스틱 재고지수는 120(2020년=100)으로 편람에 제시된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한계에 내몰린 사업이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 빚을 내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며 “최근 3년간 국내 석화사들이 투자를 단행한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진 자산을 팔거나 사업을 정리해 연명해 온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다만 이번 사업 재편 과정에서 산업통상부가 영구채 전환, 연구개발비 지원, 세제 혜택, 전기료 원가 절감 등 기업과 산업단지마다 맞춤형으로 투자 관련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석화설비 상당수는 가동 30~50년 차 노후 설비입니다. 편람에 따르면 한화솔루션(009830) 울산 PVC 설비는 1966년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SK지오센트릭 울산 자일렌·톨루엔 설비는 1970년, 벤젠 설비는 1972년 가동됐습니다. 금호석유화학(011780) 울산 공장의 PS와 ABS 설비는 1973년, 부타디엔 설비는 1979년 첫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한유화(006650) 울산 PP 설비는 1976년부터, 롯데케미칼(011170) 울산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설비 역시 1980년부터, GS칼텍스 울산 PP 설비는 1987년부터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울산에 특히 노후 설비가 밀집해 있다”며 “유지보수 투자가 줄어들 경우 설비 효율 저하는 물론 안전관리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단순히 설비를 줄이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투자를 이어가는 것이 사업 재편의 핵심”이라며 “산업통상부와 규제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엇박자를 내고 있는데 석화업계의 심각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윤영혜 기자 yy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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