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원전의 그늘)④(단독)한전기술, '악조건 아니'라더니…내부선 "재검토 불가피, 시공·공정 영향"
내부 문건엔 '공조 용량 산정 근거·가정 빈약…해결 절실'
국회 답변서엔 발주처 불만·설계일정 지연·기술평가 지연
한전기술 "정상적인 설계 프로세스…협의 통해서 해결 중"
2026-10-27 06:00:00 ㅣ 2026-10-27 06: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유근윤 기자] 한국전력기술은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자력발전소 삼중수소제거설비(TRF) 사업의 설계를 맡은 A씨(팀장)의 사망을 두고 "사업은 도전적이긴 했지만, 특별히 악조건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유족이 현장의 과중한 업무 압박을 사망 배경으로 지목하자 내놓은 반론입니다. 하지만 한전기술이 작성한 문서 곳곳엔 발주처 불만과 설계 일정 지연 등 사업이 순탄치 않았던 정황이 담겨 있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27일 <뉴스토마토>가 입수한 한전기술 내부 문건엔 공조(HVAC) 설계 전반을 다시 검토해야 하고 시공과 공정에도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는 판단이 담겼습니다. 해당 문건의 제목은 '[엔지니어링솔루션본부] CTRF 건설사업 설계 주요 현안 검토'로, 지난 7월20일 한전기술 본사의 총괄기술실이 작성했습니다. A씨가 6월22일(현지시간) 숨진 지 4주 뒤입니다.
 
문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HVAC 설계에 관한 부분입니다. HVAC는 건물 안의 냉난방과 환기를 맡는 설비입니다. 기기들이 내뿜는 열을 식히고 새 공기를 넣어주는 대형 에어컨에 가깝습니다. 원전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HVAC 설비의 크기는 기기마다 내는 열을 모두 더해 정합니다. 주요 기기와 공간 배치가 정해진 뒤 남은 자리에 들어가는 설비기 때문에 처음부터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설계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건엔 체르나보다 TRF의 HVAC 설계를 두고 "부하 및 용량 산정의 근거와 가정이 빈약함이 확인된다"고 적혔습니다. 상용 원전 자료 등으로 미리 계산해 보니 필요한 용량이 현재 설계 용량을 크게 웃돌아 "관련 자료 재검토 및 상세 재계산을 수행 중"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HVAC 설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며, 시공 및 공정에 상당한 영향이 예상된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대해 원전업계 관계자는 "용량이 커진다는 의미는 단순하게 공간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기기 사이즈도 커져야 되는 것"이라며 "여유 범위를 넘으면 공간이 부족해지는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전기술도 이 사안을 가볍게 보지 않았습니다. 문건엔 "본 현안은 HVAC 담당자가 기술적으로 해결에 한계가 있으며, 관련 부서와 사업관계자의 전반적인 사업 특성의 이해 가운데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면서 "해결 절실"이라고 쓴 겁니다. 
 
2023년 6월27일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자력발전소 삼중수소제거설비 건설사업 계약식. (사진=한국전력기술)
 
한전기술이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안호영 민주당 의원실에 낸 답변서에도 사업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 여럿 있습니다. 한전기술은 공식 문서로 남은 것은 없지만, 발주처의 이의와 불만이 한국수력원자력을 거쳐 전달됐다고 밝혔습니다.
 
한전기술은 "공식적으로 문서화된 (루마니아 발주처의) 이의, 불만, 항의 내역은 없다"면서도 "계약상대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을 통해 발주처의 불만 사항이 전달된다"고 했습니다. 주요 불만 사항은 △설계도면 작성법 △계약서상 설계일정 지연 △기술평가 지연 등입니다. 
 
한전기술 설계도면이 국내 작성 방식을 따르고 있어, 최종 승인권을 가진 루마니아 발주처가 검토·승인에 애로를 겪었다는 겁니다. 한전기술은 입찰 때 월성 원전 설비를 기준으로 배치도를 냈는데 계약 직전 발주처 개념설계를 준수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이를 전면 개정하면서 계약상 설계 일정을 지키지 못해 항의를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기자재 구매 단계에서도 일이 막혔습니다. 체르나보다 TRF에 들어갈 주요 기자재는 주계약자인 한수원이 입찰로 사들이고, 한전기술은 응찰 업체 제품이 설계 요건에 맞는지 따지는 기술평가를 맡습니다. 한전기술은 답변서에서 이 기술평가가 늦어졌다고 자체 분석했습니다. 소량·소액 구매에 응찰한 업체들의 자료 제출이 늦었고, 특히 "해외 입찰사의 불성실 답변 및 자료 제출 지연 등으로 기술평가 지연이 발생했다"고 했습니다. 어느 업체 제품을 쓸지 정해져야 크기와 무게, 발열량 같은 정보를 받아 설계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구매가 지연되면 설계도 그만큼 밀리는 구조입니다.
 
한 한전기술 관계자는 "체르나보다 TRF는 직원들도 처음부터 어려울 걸로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실제로 더 어려웠다"며 "준공일은 정해져 있는데 일정 조정은 제대로 안 되고, '설계가 늦다'는 비판이 한전기술에 집중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 사업은 특히 발주처 승인 절차가 큰 부담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우리가) 도면을 내면 발주처 의견을 달고, 이를 설명해서 풀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였다. 사소한 코멘트 하나 때문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일이 무한 반복되면서 업무가 가중됐다"고 했습니다.
 
고인의 유족은 이런 문제들이 업무 부담으로 작용해 A씨를 짓눌렀다고 주장합니다. 유족에 따르면, A씨는 6월 초 HVAC 설계에 환기량만 반영되고 기기 발열부하는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유족은 "A씨가 HVAC를 포함한 기계 설계 3개 분야를 총괄했던 만큼, 기존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보다 더 과중된 극도의 불안, 압박 상황에 이르게 됐다. 동료들의 증언도 있다"면서 "조직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라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뉴스토마토>는 한전기술에 회사 내부 문건과 국회 답변서에 '루마니아 사업의 어려움'이 담겨 있는데도 '악조건이 아니었다'라고 본 근거가 무엇인지, 설계 재검토와 일정 지연 등이 현장 파견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키운 것은 아닌지 등에 관해 입장과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전기술 측은 "체르나보다 TRF 설계 프로젝트는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현안이 발생하고, 상호 협의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면서 완성되는 형태"라며 "상세설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설계 수정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정상적인 설계 프로세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루마니아 사업의 경우 발주처에서 수행한 개념설계에 제시된 HVAC 설계 용량을 기반으로 상세설계를 진행하는 단계에서 기기 공급자 데이터를 접수하여 설계 용량을 확인했다"라면서 "그 과정에서 설계수정이 발생하면서 승인 과정에서 애로가 있었으나, 한수원 및 발주처와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관련 현안들을 해결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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