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두가 다 아는 ‘밥상론’. “모든 스태프가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갖고 맛있게 먹으면 된다”는 배우 황정민의 청룡영화상 수상 소감. 그런데 요즘 이 ‘밥상론’이 왜곡되고 변질된 듯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왜곡과 변질의 주인공 같다.
황정민의 ‘밥상론’은 수많은 스태프들의 숨은 노고를 알아 달라는 호소였다. 하지만 문체부의 ‘밥상론’은 결이 많이 다르다. 일단 숟가락 먼저 들이밀고 본다. 남들이 차려 놓은 밥상에 자신의 숟가락을 우격다짐으로 밀어 넣은 뒤 “이 밥상 나도 같이 차렸다”며 자화자찬하는 꼴이다.
지난 13일 열린 국정감사는 문체부의 안일한 K-콘텐츠 산업 인식 수준과 허울뿐인 지원 정책이 여실히 드러난 시간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주가가 치솟는 K콘텐츠 산업을 총괄 담당하는 문체부지만 정작 절실하고 시급한 콘텐츠 산업 육성 해법은 제시 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 즉 문체부가 K콘텐츠를 바라보는 수준은 20년 전 글로벌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대장금’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당시 문체부는 ‘대장금’을 두고 중형차 소나타 10만대 수출 효과를 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후에 글로벌 성공을 거둔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또 어떤가. 1조원 경제 유발 효과를 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래서 그 엄청난 성공 결과에 문체부는 어떤 역할을 했고, 무슨 도움을 줬으며 무슨 힘을 더했는지 궁금하다. 쉽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또 다시 ‘오징어 게임’ 성공이란 초대박이 터졌다. 그리고 문체부는 ‘K콘텐츠’란 신조어까지 만들어 사용하고 홍보하며 지원보단 숟가락 얻을 밥상 찾기에만 집중해 왔다.
지난 8월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가 발표한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는 6330억 달러. 반면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가 조사한 올해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는 2조 6000억 달러 규모. 콘텐츠 시장이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시장을 4배 가량 앞지른 수준이 됐다. 그런데도 콘텐츠 시장에 대한 정부 지원은 현장 목소리를 종합해 보면 반도체 시장 대비 전무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해가 지날수록 K콘텐츠 산업은 성장 중이다. 세계 최대 OTT플랫폼 넷플릭스에서도 ‘K콘텐츠’가 대세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한국이 만들면 세계가 본다”며 ‘K콘텐츠’ 중요성을 언급해 왔다. 역대 넷플릭스 최고 시청 시간을 보유 중인 ‘오징어 게임’ 시즌2 제작비가 1000억대 이상이란 추측성 보도도 나오고 있지만 결코 이상하지 않다. 이 역시 ‘글로벌 니즈’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조업과 문화산업을 단순 비교할 수 없고, 반도체 시장 지원 규모를 줄이자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연일 치솟는 제작비에 글로벌 OTT플랫폼과의 경쟁에서도 힘겨워하는 국내 콘텐츠 제작 기업에 대한 지원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단 얘기다. 한때 글로벌시장을 휘어잡던 홍콩 영화 시장 몰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현 상태가 지속되면 문체부가 그토록 찾던 밥상 자체가 없어져 버릴 수 있다.
이제라도 국내 콘텐츠 산업 육성과 보호를 위한 전반적 제작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세제 지원이든 현금 지원이든 더 많은 밥상이 차려질 수 있는 다각도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할 일 많은 문체부가 고등학생 그림 하나에 목매달고 있는 상황, 사실 많이 쪽팔린다. 숟가락 얹을 밥상을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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