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의 본질이 온다.
지난 6일 오후 망원동 카페 ‘벨로주, 김창완이 기자들 앞에 섰다. 코로나19로 사회가 멈춰서다시피 했던 2020년, 홀연히 발매한 솔로 앨범 <문>때도 언론 노출이 잦지 않았던 그였기에 50여명 이상의 기자들이 모인 자리는 이채로웠다. 그의 왼쪽에는 어쿠스틱 기타가 세워져 있었고, 오른 편에는 하이파이 오디오와 산울림의 LP전집이 놓여 있었다. 기타와 음반을 배경으로, 그는 언론을 상대로 기자 회견이라 쓰고 토크 콘서트라 불러도 좋을 시간을 가졌다. 1977년 ‘아니 벌써'로 혜성같이 데뷔한지 45주년을 맞아 산울림 전집 LP리마스터 발매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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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천공의 성 같은 존재다. 신중현으로 대표되는 미8군 출신의 록 뮤지션 계보에도, 캠퍼스 그룹사운드의 계보에서도 벗어 나있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로 구성됐던 그들은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밴드였다. 모든 인기라는 게 세월의 이끼를 이겨내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진다. 아무리 위대한 음악일지라도, 그래서 추앙 받을지라도 동시대성을 유지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래서 추억의 대상이 되고 학술적 존경의 대상이 될 뿐이다. 하지만 산울림의 음악은 세월의 이끼를 입지 않는, 한국 대중음악에서의 지극히 예외적 유산이다. 그들이 데뷔했던 1977년은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던 청년문화의 새싹이 피어오르던 때다. 그 해 여름 MBC대학가요제가 처음 개최되며 대학가의 풋풋한 피들이 음악계에 씨를 내렸다. 대상을 차지한 샌드패블즈의 ‘나 어떡해'를 작사, 작곡했다는 사실이 인연이 되어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는 앨범을 발매할 수 있었다. 이 앨범에 담긴 ‘아니벌써'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2012년 봄,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광풍을 일으키던 때다. 길거리 모든 곳에서 흘러 나오는 이 노래 앞에서 김창완은 “‘아니벌써’가 나왔을 때도 이랬었다"며 그 때를 회고했다.
그렇게 세상에 등장한 산울림은 1996년까지 총 열 세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대중음악사의 대표적 명반으로 거론되는 1집과 2집이 아니더라도, 모든 앨범에 당대와 호흡할 수 있는 히트곡이 있었다. 장르도 다양했다. 산울림의 노래는 과거의 추억에만 머물지 않는다. ‘레전드'라는 박제된 단어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의 동물원부터 2000년대 후반의 장기하까지, 산울림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받은 뮤지션들이 등장했다. 아이유가 김창완과 ‘너의 의미'를 불렀을 때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을 웅변하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발매될 1집을 시작으로 내년 하반기까지 진행될 산울림 리마스터 프로젝트는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산울림의 음반이 ‘공식적’으로 리마스터 발매된 건 2008년이다. 그해 1월, 막내 김창익이 세상을 떠난 이후였다. 그는 김창완밴드를 결성하며 산울림을 공식적으로 해체했다. 대신 오리지널 릴 테이프를 기반으로 CD박스를 발매했다. 막내를 기리는 작업이었다.
다시 14년이 지났다. CD의 자리는 2000년대 후반보다 더욱 줄어들었다. 대신 LP가 재등장했다. 감상으로서의 음악은 스트리밍이, 소장으로서의 음악은 LP가 차지하는 세상이 왔다. 그에 발맞춰 과거의 히트앨범, 또는 명반들이 LP로 속속들이 재등장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레코딩 당시의 소리가 고스란히 담긴 오리지널 릴 테이프 대신 예전에 찍었던 LP나 혹은 CD를 소스로 해서 재발매되는 음반이 태반이라는 걸.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최근의 LP붐도 장사속이 먼저고 본질은 나중이라는 자본주의의 거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반면, 산울림의 음악이 그러하듯 새로이 태어날 LP는 본질을 향한다. 오리지널 릴테이프를 기반으로 미국 LP제작 장인의 손을 거쳐 우리 곁에 돌아온다. 이 작업에 직접 관여한 김창완은 “그 노래를 들으면서 그 때의 떨림과 불안이 다 느껴졌다"고 했다. 열악했던 환경과 기술 탓에, 삼형제가 연주한 있는 그대로의 소리를 담아내지 못한 당시의 음반에선 느낄 수 없었던 생생함이 고스란히 살아났다는 것이다. 아직 CD가 보편화되기 전, 산울림의 팬들이 동네 레코드가게에서 샀던 30cmX30cm종이 커버에 담긴 검정 플라스틱 원반에 김창완도 잊고 있던 그 때의 소리가 담겨 2020년대에 안착한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noisep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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