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 인플레이션 방지법(IRA)과 관련한 구체적 성과를 못내면서 기업 스스로 해법을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재계는 관련 조항이 '한미 간 추가 협의'로 넘겨진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 한국 기업에게 피해를 주는 조항을 정리하지 못하면서 재계 총수들이 IRA 대응 마련에 나서게 됐습니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정상회담에서 미 IRA 조항 등과 관련해 한국 기업 보조금 차별과 영업기밀 유출 우려를 덜기 위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에 동행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독소조항 IRA, 구체적 해법 없이 원론만
IRA는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골자로, 우리 기업에게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힙니다. 최근 미국 정부가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 16종에는 현대차·기아 차량이 모두 제외됐습니다. 우리 정부와 자동차업계는 애초 '북미 최종 조립'이라는 보조금 지급 기본 요건을 당장 맞추기 어려운 만큼, IRA 시행 유예를 미국 측에 강력히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에 공급하는 전기차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립하는 한국 자동차업계에는 대안 마련에 분주해졌는데요. 당초 이번 윤 대통령 방미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해당 문제의 실타리가 일정 부분 풀릴 거란 기대감이 적지 않았습니다. 테슬라를 제외한 모든 북미산 전기차에 국내 배터리 3사의 배터리가 공급되는 것을 지렛대로 활용해 한국 업체에 대한 세부규정 적용을 유연화하는 방안이 도출되지 않겠냐는 전망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 기업들의 투자와 사업활동에 특별한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IRA와 반도체법이 기업 활동에 있어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 상호 호혜적인 미국 내 기업 투자를 독려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긴밀한 협의를 계속해 나가기로 약속했다"며 원론적 수준의 언급만을 했는데요. 산업계의 최대 현안인 IRA 등에서 소득이 없어 '빈손 외교'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현대차·기아가 IRA 적용이 제외되는 상황에서 획기적인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활로를 모색 내지는 숨통 틔우기는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있던 건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구광모 LG 회장(왼쪽 부터), 류진 풍산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 기업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 스스로 해법 마련 나서…현대차·SK온, 합작법인으로 IRA 대응
결과적으로 정부가 IRA 관련 추가 협상을 끌어내지 못하면서 기업 스스로 해법 마련에 나섰습니다. 현대차그룹과 SK온이 북미 합작법인(JV)을 설립하며 미 IRA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데요. 국내 완성차 기업과 배터리 업체가 협력해 미국 현지에 JV를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는 전기차 보조금과 생산 세액공제라는 이득을 취하기 위한 기업 차원의 '동맹'으로 풀이됩니다.
업계에선 양사의 협력으로 미 IRA 대응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IRA는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형태로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세부지침에서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라도 올해의 경우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 시 3750달러 △미국이나 FTA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광물의 40% 이상 사용 시 3750달러가 각각 지급되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양사의 합작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장착한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전기차 세액공제 요건에 부합하게 됐습니다. SK온 역시 이번 합작을 통해 북미 시장에서 대규모 수주 물량 확보와 안정적 수익성을 담보하게 됐다는 평가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기업들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경제안보 핵심 현안과 관련해 명문화된 추가 조치를 도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산업계에서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맞서 동맹국으로서 우리 정부가 제 목소리를 내주길 바랐지만, 결과적으로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기업에서 해결하게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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