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 서울 강서구 일대에 빌라를 소유한 A 씨. 보증금 2억3000만원에 전세를 내놨지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2억1000만원으로 가격을 낮췄습니다. 그래도 집을 찾는 사람이 없어 1억9000만원으로 가격을 더 내렸지만 여전히 들어오려는 세입자가 없어 답답한 상황입니다.
전세사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전세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세 보증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보증금을 조금이나마 낮춘 반전세나 보증금이 없는 월세를 택하는 임차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3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20만~30만원 정도 내는 반전세 계약을 선호하는 추세"라며 "전세 대출 이자를 생각하면 나가는 돈은 같지만 보증금이 줄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실제로 빌라 전세 거래량은 줄었습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를 보면 집계가 완료된 올해 1~3월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거래량은 1만5928건으로 전년 동기(2만2751건) 대비 약 30% 가량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기준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전세자금대출 이자 부담이 크게 뛰었고, 여기에 전세사기 문제가 맞물리면서 수요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됩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빌라 밀집지역. (사진=김성은 기자)
강서구 방화동 일대 부동산 관계자는 "공급 대비 수요가 없어 전세시장 자체가 정체됐다"면서 "임대차 3법 시행으로 계약기간을 2년 더 연장할 수 있게 된 데다 상생임대인 제도와 비용 부담 등으로 수요자들의 이동이 활발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세제도에 대한 불신이 많이 커졌다"며 "전셋값이 내려가니 임대인들은 내줘야 할 돈이 늘었고, 전셋값 하락에도 임차인들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등 양쪽 모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세사기 문제가 격화되면서 정부는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는데요. 임차인 위주의 정책에 임대인들은 들고 일어섰습니다.
전국임대인연합회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증금 반환 목적의 대출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을 위해 주택담보대출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풀어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대상을 전세가율(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 100%에서 90%로 낮추는 등 요건을 강화한 점도 보증금 반환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올 2월 정부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전세사기 대책을 내놓은 적 있죠.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임대차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돼야 하는데, 정부에서 임차인 보호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니 임대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측면이 있다"면서 "시장에 왜곡을 가져오지 않도록 적절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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