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 존엄사 '연명의료결정법'…법적 쟁점은?
2025-02-24 15:41:07 2025-02-24 15:41:07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가정에 큰 병을 앓거나 오랜 기간 투병하는 환자가 있으면 가까운 가족들은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힘들어집니다. 병원비나 호스피스 서비스 및 간병을 위해 드는 시간이나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오랜 기간 간병하던 간병인이 간병 생활에 지쳐 환자를 살해하는 일까지 종종 일어납니다.
 
최근 암 말기 진단을 받은 부인을 간호하던 70대 남편이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직후 자수한 점 △피해자가 말기 암 진단으로 신체적 고통을 호소해 왔을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과 피해자가 별다른 재산이 없고 고령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워 병원비 마련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지만 그럼에도 죄책이 무겁다고 봤습니다.
 
2023년 7월12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조력존엄사(의사조력자살)의 인권적 쟁점과 대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9명은 말기 환자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10명 중 8명 이상은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찬성했습니다. 지난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이 지난해 4월부터 5월까지 성인남녀 1021명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신체적인 통증을 덜 느끼고 가족에게 병수발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된 겁니다.
 
1997년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퇴원을 간청해 담당 전문의와 주치의가 치료 중단 및 퇴원을 허용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04년 대법원은 담당 전문의와 주치의에게 살인방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의료기관에서는 환자의 회복 가능성과 상관없이 사망 시까지 치료를 지속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2009년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가 된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을 요구한 사건에서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렀는지는 주치의의 소견뿐 아니라 사실조회, 진료기록 감정 등에 나타난 다른 전문의사의 의학적 소견을 종합하여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연명의료 중단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 나왔던 겁니다.
 
이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제정돼 2017년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법은 말기 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 대한 치료나 연명의료 등과 관련한 사항을 규정해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결정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연명의료계획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또는 환자가족의 진술을 통해 환자의 의사로 볼 수 있는 경우 등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에 대한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면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할 수 있습니다.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을 이행하더라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을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담당의사가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의 이행을 거부하면 의료기관의 장은 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담당의사를 교체해야 하고, 이행거부를 이유로 그 담당의사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분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담당의사는 중단 등 결정의 과정 및 결과를 기록하고 의료기관의 장은 그 결과를 지체 없이 관리기관의 장에게 통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연명의료결정법 제19조).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그밖에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질환에 해당하는 질환으로 말기 환자로 진단받은 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통증과 증상의 완화 등을 포함한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영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를 말합니다. 호스피스 대상 환자가 호스피스를 이용하려면 이용동의서와 의사가 발급하는 의사소견서를 첨부해 호스피스 전문기관에 신청해야 합니다. 호스피스 서비스는 입원형·가정형·자문형으로 구분되고 환자의 상황과 필요도 및 선호도에 따라 제공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임종과정에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환자의 온전한 의사가 반영되기 힘들고, 물이나 영양분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을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해서는 안 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호스피스 서비스는 말기 환자를 유기한다는 등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러한 연명의료결정법의 한계점과 위 조사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인식으로 볼 때 조력 존엄사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기로 보입니다.
 
우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조력 존엄사 대상을 엄격히 인정할 방법의 마련이 필요합니다. 의료진에 대한 보호 대책도 마련돼야 합니다. 조력 존엄사는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바람직한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널리 형성된 후 도입돼야 할 것입니다. 자칫 자살을 부추기거나 본인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을 위해 비자발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우려도 있습니다. 따라서 신중한 논의와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쳐 안전하게 도입하는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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