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로 택한 반도체특별법…미·중·일 공습에 '무방비'
고용부, 특별연장근로 지침 발표
1회 3개월서 6개월로 늘리기로
미·중·일 대규모 반도체 보조금 투입
2025-03-14 18:11:36 2025-03-14 18:33:25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김태은 기자] 총성 없는 전쟁인 '반도체 대전'에서 한국만 뒷걸음질 치고 있습니다. 미·중·일이 앞다퉈 천문학적 규모의 반도체 보조금을 쏟아붓는 사이, 한국은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한 채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반도체 연구직의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한 게 대표적인데요. 정치가 발목을 잡으면서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린 셈입니다. 
 
입법조차 막힌 'K-반도체' 현실9개월째 '공회전'
 
고용노동부는 14일부터 '반도체 연구개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업무처리 지침'을 시행했습니다. 특별연장근로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까지 늘릴 수 있도록 지침을 변경했는데요. 지난 12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방안을 확정한 지 이틀 만에 현장 적용에 나섰습니다.
 
특별연장근로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근로자의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연간 최대 3회 연장할 수 있기에 사실상 1년 내내 주 60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해졌습니다. 주 52시간 규제 예외 조항을 둘러싸고 반도체특별법이 9개월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지침 개정이라는 차선책을 택했습니다. 
 
그간 정부·여당은 국내 반도체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R&D 분야에 한해 주 52시간 규제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추진했습니다. 지난달 20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야정 국정협의체에서 "미국·일본의 반도체 첨단 인력들은 근로 시간 제약 없이 신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며 "현재 제도로는 집중근무가 어려워 연구 단절이 발생하고 수요기업 발주에도 즉시 대응이 어렵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만 담은 특별법을 우선 통과시키고 52시간 예외 문제는 장기적으로 토론하자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법안은 상임위원회 소위 문턱도 넘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는 순서가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주 52시간 규제 예외가) 도움은 되겠지만,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회사가 일감이 많아서 초과 근무를 하게 되는 것이지 초과 근무를 한다고 기술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라며 "외교문제 해결, 반도체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등 종합적으로 관리해 주는 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K칩스법은 반도체 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대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은 이날 공사가 진행중인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모습. (사진=뉴시스)
 
한국 기어가는 사이…자본 앞세워 치고 나간 '미··일'
 
반도체 전문가들은 기술 선점을 위한 선제 투자가 중요하다고 입 모아 말합니다. 한국은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통과돼 반도체 기업의 세액공제 혜택이 확대됐지만, 여전히 반도체특별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중일은 반도체 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벌써 '쩐의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도 지난 11일 반도체 현장을 방문해 "미국, 일본, 대만은 국운을 걸고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하고 있고 중국은 우리 주력인 메모리를 턱밑까지 추격해 온 상황"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미국은 2022년 칩스(CHIPS)법을 제정하고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및 설계 기업에 540억달러의 보조금과 신규 반도체 제조 시설에 25% 세금 공제를 위한 24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반도체 산업 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22일 기준 325억 달러의 보조금과 최대 55억달러의 대출이 32개 기업의 48개 프로젝트에 걸쳐 23개 주에 지원됐습니다. 인텔은 78억 6500만달러의 직접 지원을 확정하고, 100억달러의 저리 대출 지원도 받았습니다.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일본도 생산 기반 강화를 위한 직접 보조금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지난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수립하고 이에 맞춰 지원 예산 약 4조엔(약 35조원)을 확보했습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지난 2022년 4월 규슈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에 위치한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대만 TSMC제1공장 건설 당시 설비 투자액의 절반에 가까운 약 4조2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이어 착공에 들어간 TSMC의 규슈 제2공장에도 약 6조50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규슈경제산업국에 따르면 TSMC가 구마모토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한 이후 2021년 4월부터 2024년 6월까지 규슈 내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가 100건에 달했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공식 발표된 투자 금액만 한화로 42조원이 넘습니다.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도 미국의 반도체 제재에 대응해 주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빅 펀드'라는 국가 반도체 산업 투자 기금을 통해 산업을 지원하는데 2024년 3차 펀드 조성에 475억 달러(68조 3995억 원) 규모의 자금이 모였습니다.
 
이 교수는 "반도체 산업이 국가 간 경쟁이 됐다. 중국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여러 부분에서 추월하는 상황이고 미국은 해외기업 유치, 제조업 생산 라인 확대 등 너도나도 선제적으로 투자하려고 한다"며 "한국은 상대적으로 (이러한 점이) 미흡하다. 그럼 몇 년 후에는 반도체 강국은커녕 3류, 4류 국가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