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명신 기자] 미국이 자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한국에 잇단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K-조선에 호재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 조선산업 쇠퇴로 한국 조선업체들이 현지에 진출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데다, 현재 미국의 조선 협력 정책 방향이 바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화오션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사들은 미국 현지 진출을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조선 협력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 미국과 협력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에는 공화당 마이클 리 의원 등이 해군 함정 건조를 동맹국에 맡길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선 미국 진출이 쉽지만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책이 확실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는 부담인 탓입니다. 조선업은 선박 건조 시 선박 기자재, 조립 등 대규모 작업이 동시에 이뤄집니다. 이에 조선소와 협력업체가 모여 생태계가 조성돼야 하는데 미국은 조선산업이 쇠퇴해 생태계 조성이 어려운 점도 난관입니다.
결국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려면 아시아나 유럽에서 기자재를 수입해야 하는데다, 숙련공 영입도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 진출하면 현지 인력과 시설로 생태계 조성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조선업이 쇠퇴해 투자 비용과 생태계 조성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미국에 운항되는 선박은 미국에 위치하거나 미국인이 소유한 시설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존스법’이 아직 개정되지 않아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지 투자를 통해 조선업이 되살아나면 현재 미국이 추진 중인 정책 방향성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현재 미 현지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은 한화오션입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1억달러를 투자해 필라델피아에 있는 필리조선소를 인수했습니다. 한화오션은 추가 투자를 통해 필리조선소를 중요 현지 거점으로 활용할 전망입니다. 필리조선소 인수에 함께 참여한 그룹 계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0일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이 중 8000억원을 해양 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HD현대중공업도 미국 투자 기회를 검토 중입니다. 김지훈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책임매니저는 지난달 워싱턴D.C. 허드슨연구소에서 열린 대담에서 “장기적으로 미국 내 투자 기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반도체와 배터리가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는 것처럼 함정 건조도 비슷한 방식으로 갈 확률이 높다”면서 “울산이나 거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경제 유발 효과가 미국으로 옮겨갈 수 있는 만큼 조선 협력의 이면에 있는 리스크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명신 기자 si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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