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재계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속도 조절’을 촉구했습니다. 예외 요건과 절차가 충분히 설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시행될 경우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되는 등 자본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명확한 기준 정비와 추가 보안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민주당 코스피5000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경제8단체 간담회에서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앞줄 왼쪽 네번째)과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위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 단장(앞줄 왼쪽 다섯번째)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11일 대한공회의소(이하 대한상의)를 비롯한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무역협회 등 경제8단체는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위·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태스크포스(TF)와 간담회를 갖고 이 같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현재 민주당은 자사주가 특정 주주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내 3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여당이 추진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은 자사주를 취득할 때 1년 이내 소각을 해야 하고 처분 계획을 매년 주주총회에서 승인받아야 합니다. 또 임직원 보상 등 일정 요건 목적의 경우에는 주총의 특별 결의 등 승인을 받아야만 보유 또는 처분할 수 있습니다.
재계는 예외 허용 범위와 절차에 대한 논의가 없이 입법이 빠르게 진행되면, 기업 경영 판단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습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자본시장을 활성화하자고 하는 데 대해 경제계도 이견이 없다”면서 “지난번 1·2차 상법 개정한 게 아직 발효 전인 것도 있는데 자사주 소각 법안까지 추가 발의된 만큼 속도 조절과 함께 현실적으로 작동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부회장은 또 “속도나 예외를 얼마만큼 허용할 건지, 어떤 절차로 허용할 건지, 실제로 법안과 현실적으로 작동하는 부분에 대해 머리를 맞대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경제8단체 상근 부회장들은 자사주 규제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는데, 크게 △자사주 처분 기간 연장 △벤처기업 특례 △외국인 지분 규제가 있는 기업 △비상장·벤처기업 △신탁·질권 등 계약 관계에 얽힌 기존 자사주 등에서 적용 기간과 방식의 탄력적 운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모아졌습니다. 자사주 규제 및 경제형벌·민사책임 제도개선에 대한 속도 조절과 예외 확대, 경영 판단 원칙 명문화 등이 필요하다는 요구입니다.
오기형 코스피5000특위 위원장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경제계의 문제 제기는 대부분 자사주 규제의 적용 기준에 대한 부분”이라며 적용 대상과 기존 자사주 처분 기한 연장이나 벤처·창업기업 고려 등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어 “경영상 목적으로 제3자에게 자사주를 처분하는 절차와 관련한 제도를 조금 더 유연하게 할 수는 없느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신주 발행 절차와의 정합성 여부 등을 따져볼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민주당 코스피5000특위 경제형벌민사책임합리화TF가 경제8단체와의 간담회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백아란 기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 후속 조치로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이 유력화하고 있습니다. 상장사 지분 25% 이상을 취득해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 지배주주와 동일한 가격에 소액주주 등의 남은 지분도 강제 매수하게 함으로써 주주 보호를 꾀한다는 복안입니다.
오 위원장은 “경영권 방어 수단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잔여지분 매수 비율) 기준을 몇 퍼센트로 설정하고 ‘플러스 알파’를 정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차이가 있지만 경재계에서도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배임죄 대체입법 논의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습니다.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이 과도한 형사처벌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경제계는 경제형벌 민사책임과 관련, 경영 판단의 원칙을 명문화 해달라는 입장을 전달했고 민주당도 이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권칠승 민주당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TF 단장은 “배임죄 관련해 보완 입법 요청이 있었는데 임직원들의 사적인 유용, 또 경영 판단과 무관한 그동안의 배임으로 처벌되던 것들, 이런 것들에 대한 통제는 계속되는 방향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배임죄 합리화 이외에도 집단소송, 디스커버리 제도 그리고 또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혁신기업을 지원하는 방안 모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는 기업의 형벌 위험을 줄이고 그 결과물로 얻은 혁신 경쟁력이 침탈당했을 때 손해를 올바르게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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