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호탕한 웃음소리, 노타이에 계절을 반영한 듯한 재킷과 캐주얼 바지. 전 세계인을 향해 두 팔 벌려
삼성전자(005930)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 온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의 프레젠테이션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습니다.
'CES 2024'에서 삼성전자 한종희 대표이사 부회장이 '모두를 위한 AI: 일상 속 똑똑한 초연결 경험'를 주제로 열린 삼성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25일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한 부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그룹 부회장 자리에까지 오른 '샐러리맨 신화'였습니다. 1962년생으로 자타공인 TV 개발 전문가였던 그는 삼성전자의 브라운관 TV부터 PDP(두꺼운 액정) TV, LCD TV, 3D TV, QLED TV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삼성의 모든 TV 제품 개발에 참여하거나 주도해왔습니다. 1990년대까지 일본 소니가 장악했던 글로벌 TV 시장에 ‘삼성’이란 브랜드를 알린 주역이 한 부회장이었습니다. 꾸준하고 성실한 태도로 ‘코뿔소 사장’이라고 불렸다는 그는, 구성원들 사이에서 온화한 리더십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유명했습니다.
한 부회장은 퀀텀닷 소자를 이용한 QLED TV를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TV 최상단에 배치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TV 시장에서 19년 연속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LCD TV보다는 비싸지만, OLED TV 대비 가격 경쟁력을 갖는 QLED TV를 앞세운 한 부회장의 전략적 판단이 먹힌 결과라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QLED TV는 퀀텀닷 소자를 적용한 프리미엄 LCD TV를 뜻합니다.
전자업계에선 AI 시대 들어서는 ‘AI 가전=삼성’이라는 공식 기틀 마련도 한 부회장이 주도했다고 평가합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AI 가전=삼성’ 슬로건을 내걸고 이를 토대로 가전 구독 사업을 본격화했습니다. 고인은 앞선 19일에 개최된 주총이 끝난 뒤 곧바로 중국 출장길에 올라 중국 최대 가전 전시회 ‘AWE 2025’를 방문해 거래선과 미팅하는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으며, 오는 26일에는 삼성 가전 최대 행사인 ‘웰컴 투 비스포크 AI’의 기조연설을 맡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2018년 7월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삼성 디지털시티'에서 미래 TV에 대한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성전자는 “고인은 TV 사업 글로벌 1등을 이끌었으며,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세트부문장 및 생활가전(DA) 사업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 오셨다”고 고인을 기렸습니다. 업계 경쟁자이자 동료인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LG전자 주주총회 이후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한 부회장은 한국의 전자산업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주셨고, 지난 37년간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기여를 하신 분"이라며 "참 아쉽게 생각하고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외신도 한 부회장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일본 경제지 니혼게이자이의 영자신문인 <닛케이아시아>는 "그는 최근 며칠 동안 건강해 보였기 때문에, 그의 사망은 회사와 재계에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보도했습니다. <CNN>도 삼성전자 사내 메시지를 인용해 "그는 전자 및 가전 사업의 책임자로서 도전적인 사업 환경 속에서도 회사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전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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