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씨 파면 이후 조기 대선 정국으로 전환하면서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선포를 계기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따른 '1987년 헌법 체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우원식 국회의장부터 여야의 주요 대권주자들 모두 개헌 추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선 모두 동의하지만, 시기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특히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개헌보다 내란 종식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어 개헌 논의에 난항이 예상됩니다. 변수는 '민심'입니다. 정치권의 치열한 수싸움과는 달리, 국민 과반은 '포스트 87년 체제'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향후 오는 6월3일 치러질 예정인 대선과 함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뤄질지 주목됩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산회 후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보수·진보' 구분 없이…국민 과반 "개헌 찬성"
7일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심은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의 문을 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18일 공표된 <뉴시스·에이스리서치> 여론조사 결과(3월15~16일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무선 ARS 방식)에선 현행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는 응답이 52.4%로, 절반 이상이 개헌에 찬성했습니다. 반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37.6%로 집계됐습니다.
또 지난달 7일 발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3월4~6일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전화조사원 인터뷰)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4%가 "현행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30%에 그쳤습니다.
특히 보수층에서 53%, 진보층에서 56%로, 양 진영에서 절반 이상이 개헌에 찬성했습니다. 대통령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여야 지지층 간 견해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겁니다. 진영별로 개헌 여론이 크게 차이 나지 않은 데에는 윤석열씨의 비상계엄 선포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서 비롯됐다는 문제 인식이 자리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12·3 내란 사태로…제왕적 대통령제 '우려' 커졌다
12·3 내란 사태 이후 한때 정치권에서 논의됐던 개헌 문제가 윤석열씨 파면 이후 조기 대선 국면에서 들어서면서 다시 불붙는 모양새입니다. 이번에 비상계엄 선포와 윤씨 파면을 계기로 1987년 개헌 이후 유지돼 온 지금의 정치 체제는 중대 기로에 섰습니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 한 명의 문제로 국가 정치·사회·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무회의를 비롯한 각종 제도적 장치가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의 독단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실제 대통령의 권한엔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 등 주요 헌법기관의 구성권, 국무위원 등 각종 임명권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여기에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포함해 대통령이 수반인 정부에 법률안 제출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고 정부는 예산편성권을 독점했습니다. 정부 업무에 대한 감사 활동을 하는 감사원 역시 행정부 소속으로 대통령의 영향 아래에 있습니다. 대통령이 인사·입법·예산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에선 대통령 한 명에게 권한을 몰아준 1987년 정치체제를 바꿔야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오게 됐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롯해 87년 헌법에선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직접정치참여, 지방자치, 건국이념 범위, 5·18 정신 기재, 교육자치권 등에서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우원식(왼쪽 두 번째) 국회의장이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 미래 개헌 자문위원회 위촉식 및 제3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재명, '동시투표' 거절하자…우원식 "국민투표법 개정" 압박
국민의힘은 이날 우원식 의장이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같이 치르자는 제안을 수용했습니다. 개헌을 고리로 한 '이재명 포위 구도를 통해 이재명 대표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정작 이재명 대표는 '대선·개헌 동시 투표' 요구에 대해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야권 내부에서 단계별 개헌 추진 제안이 제기되자, 우 의장은 입장문을 통해 "개헌은 정당 간 합의하는 만큼 하면 된다"며 "이번 대선에서부터 개헌이 시작될 수 있도록 국민투표법 개정부터 서두르자"고 주장했습니다. 우 의장 측 관계자는 "일부라도 개헌을 하기 위해 (우 의장이) 국민투표법 개정안 추진에 신경 쓸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의장실에선 국민투표법 개정안 통과 데드라인을 오는 15일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줄여야 한다는 상당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개헌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조기 대선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길어야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에 현실적으로 개헌을 논의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다만 최 교수는 "대통령 임기, 권력구조 개편 문제를 제외하고 감사원 독립, 대통령 인사권 제한 등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원 포인트 개헌'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며 "헌법을 일부 보완하는 형식의 개헌을 추진해 볼 여지는 있다"고 전했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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