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약관이란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의 내용을 말합니다. 그런데 정보나 자본이 우월한 지위의 사업자가 그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작성해 거래에 악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불공정한 내용의 약관을 규제하기 위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보험계약도 보통 보험사가 미리 마련한 약관에 따라 계약의 내용이 정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보험약관 중 보통약관은 보험업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의 표준약관에 따릅니다. 보험계약마다 필요한 용어의 정의, 보험금을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사유, 지급 기준 등 정해야 할 내용이 다양하므로 약관의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깁니다. 따라서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가 그 내용을 스스로 알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보험사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관해서 설명할 의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암보험 약관의 특별약관에 대해 보험사의 설명 의무를 인정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차성 및 상세 불명 부위의 악성신생물(암)의 경우 일차성 악성신생물(암)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원발 부위(최초 발생한 부위)를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이른바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이 설명 의무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해 판결했는데, 소액 사건임에도 법령 해석의 통일을 위해 판단을 내린 겁니다.
이 사건의 원고는 암보험의 피보험자 및 보험수익자로 갑상선암과 림프절 전이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의 보험계약에는 갑상선암으로 진단이 확정됐을 때 갑상선암 치료 목적 수술을 받게 되면 보험 가입 금액의 20%만 지급하는 특별약관이 있었습니다. 이와 별도로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도 두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원고는 갑상선암 기준 보험금만 지급받게 되자, 약관 조항에 대한 설명 의무가 이행되지 않아 보험자인 피고가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일반암 기준 보험금의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원심은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이 보험사고에서 제외되는 암의 의학적인 분류 기준을 명확히 한 것에 불과하고, 일차성 암에 대한 보험금의 지급을 넘어 모든 전이암에 대하여 일차성 암과 별도로 보험금을 지급받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이례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원고가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에 따른 암의 분류와 무관하게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했다고 보이므로 설명 여부가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위 조항의 내용은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므로 피고에게 설명 의무 위반을 주장할 수 없다고 본 겁니다.
대법원은 보험자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보험약관에 기재된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관해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 의무를 진다고 봤습니다. ‘중요한 내용’이란 사회 통념에 비춰 고객이 계약 체결의 여부 또는 대가를 결정하거나 계약 체결 후 어떤 행동을 취할지에 관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을 말하고, 약관 조항 중에서 무엇이 중요한 내용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 사건에서 개별적 사정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대법원은 명시·설명 의무는 보험계약자가 알지 못해 약관의 중요한 사항이 계약 내용으로 됨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그 근거가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약관에 정해진 내용이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이미 잘 알거나 별도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 또는 이미 법령에 정해진 사항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라면 명시·설명 의무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명시·설명 의무에 위반해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를 바탕으로 보험자인 피고로서는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때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갑상선암 등 제외 조항을 별도로 두고 이차성 악성신생물(암)의 경우 일차성 악성신생물(암)이 확인되면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에 따른다는 약관 조항을 두고 있어 원고는 림프절 등의 부위에 암이 발견되더라도 갑상선암으로만 보장을 받아 20% 수준의 보험금을 지급받는 데 그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은 보험계약의 핵심적 사항으로 보험계약의 체결 여부나 그 대가를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라는 겁니다.
△일반인으로서는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에 관한 보험자의 설명 없이는 갑상선암에서 전이된 이차성 암이 진단되면 갑상선암에 대해서만 보장된다는 사정을 예상하기 어려운 점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이 보험금 지급 실무에 발생한 혼선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이 마련한 개선 방안에 따라 도입된 점 등에 따라 판단해도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보험자는 원발 부위 기준 분류 조항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고 이미 지급한 갑상선암 보험금과 일반암 보험금의 차액을 지급해야 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보험계약에 있어 보험자는 일반인이 안다고 보기 어려운 내용 중 중요한 내용에 관해 명시·설명 의무를 다해야 보험자와 보험계약자 및 피보험자 모두의 불측의 손해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는 보험금 지급 사유가 발생하면 미리 설명받거나 고지받은 약관의 내용에 따라 제대로 지급됐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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