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번역 출간된 영국 심리학자 스티브 테일러의 『불통, 독단, 야망』은 독재자의 심리 구조를 파헤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저자는 독재자에게 깃든 어둠의 3요소, 즉 사이코패스, 나르시즘, 마키아벨리즘은 세상과 단절된 자아를 가두는 일종의 감옥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독재자의 여러 행태는 우리가 지난 2년 반 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을 통해서 본 여러 특징을 거의 그대로 담고 있어 여러 번 놀라게 된다. 문제는 이런 독재자들에게는 반드시 추종 세력이 있다는 점이다. 남의 눈물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독재자의 사이코패스 기질은 카리스마로, 무모하고 비상식적이며 파격적인 행태는 결단력으로 오인된다는 거다. 이 때문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독재자의 결단력이 어지럽고 부패한 세상에 질서를 세울 것이라는 대중적 믿음이 형성된다. 윤석열 피청구인이 헌법재판소에서 심판을 기다리던 올해 초, “헌재를 처부수자”던 극우의 광장은 이런 집단의 추종 심리의 결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지난 12·3 계엄은 낮은 지지율과 추문에 시달리던 윤석열이라는 권력자가 스스로 상실과 공허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아가 대폭발한 사건이다. 카리스마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절제와 신중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통제 장치를 잃고 헌정 질서를 전복하는 무모함으로 이어졌다. 정작 이런 현상이 일군의 지지자들에게는 멋있어 보인다는 거다. 그래도 윤석열은 “무언가 한다”며 헌정을 중단시킨 결단력을 숭고한 뜻으로 오인하게 한다. 아울러 한국의 대통령은 국가를 보호하고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결단하는 존재라는 또 다른 망상과 변명이 이어진다. 한국 민주주의는 이런 독재자의 주관과 변덕을 통제하는 데 많은 취약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앙의 가드레일이 있어 파국적인 국가 상황만을 모면했을 뿐이다. 책의 저자는 민주주의가 인간 심성에서 만인이 연결되고 확장되는 공감주의(共感主義)로 진화하지 않으면 그 운명이 위태롭다고 말한다.
이제 대통령선거가 50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정부에서 윤석열을 통해 한국 사회는 카리스마를 향한 극단적 집착이 불러온 위기를 겪었다. 그렇다면 다음 정부는 이타적 공감에 기초한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으로 교체되어야만 비로소 민주주의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이라는 카리스마가 이재명이라는 또 다른 카리스마로 교체되는 걸 중도층 시민들은 민주주의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재명에 대한 지지가 과반을 넘는 것은 윤석열이나 내란 동조 세력에 비해서는 그나마 국민에 대한 공감 능력에서 비교 우위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권력자가 국민을 한꺼번에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란 없다. 반도체가 어떻고 기본소득이 어떻고 하는 현란한 성장 담론도 필요하겠지만, 공감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비전과 행동이 필요하다. 특히 분노 세대로 불리는 2030년 청년에게서 적절한 롤모델을 만들어내고, 아버지 세대와 달리 청년들이 누리게 될 기회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을 깊이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이 점을 직시하고 누군가를 돌보고 살피고 보호하는 데서 윤석열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이타적 공감의 정체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윤석열을 극복한 더 견고하고 풍성한 리더십을 만들겠다는 결기가 아니라면 국민은 곧바로 실망하며 애정을 철회하게 된다.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의 극렬 지지층과 같은 추종주의 세력과 스스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다가올 대선은 단순한 권력 교체를 넘어 영혼을 교체하는 대업이다. 분노와 상실감에서 희망과 도전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존재가 한국의 대통령이다. 권력을 치장하는 카리스마의 옷을 벗고 국민에게 조용히 봉사하다가 퇴장하면 그만이다. 그 소박함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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