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열린 서울 구로구청장 보궐선거에 국힘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자당 소속 구청장이 보유 주식 신탁/처분을 거부하며 사퇴해버려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책임진다며 내지 않았다. 공당의 대국민 약속(원인제공 선거 시 후보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을 지킨 것으로, 바람직한 태도이자 당연한 조치다. 민주당을 위시한 다른 당들도 이같은 당헌이 있었거나 적어도 말들은 그렇게 하지만, 선거때가 되면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 입 씻곤 한다. 오는 6월 3일 열리는 조기 대선도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돼 치르는 선거다.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강퇴당해 그 후임자를 뽑는 것이니 보궐선거 성격도 있다. 오늘 현재, 국힘에서는 11명의 예비후보가 나서고 있다. 무려 11명. 보름 전 구로구청장 선거와는 판이하다. 국힘의 당헌당규는 필요에 따라 지키기도 하고 어기기도 하는 고무줄인가. 구청장이니 후보 안내고 대선이니 후보 내는 건가. 선거의 급에 따라 왔다갔다할 거면 그런 당헌당규는 뭐하러 만들었는가.
여기까지는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의 고지식한 원칙주의라고 치자. 헌법을 어겨 파면된 뒤에도 ‘윤석열 1호 당원’을 제명은커녕 징계 조차 하지 않는 국힘이 과연 공당인가. 어떻게 대선에 후보를 내고, 표를 달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국힘의 대통령파면에 대한 공식 입장은 뭐고, 11명이나 되는 후보들의 윤석열파면에 대한 생각은 뭔가. 비상계엄내란을 지지하는가 규탄하는가. ‘윤 어게인’을 외치며 “5년 뒤 윤석열피고인을 대선에 다시 출마시키자”고 떠드는 전광훈 목사 류의 주장에 대한 당과 후보들의 입장은 뭔가. 왜 딱 부러지게 밝히지 못하는가. 불과 8년 전, 자당 소속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을 때는 길거리에서 줄줄이 무릎꿇고 석고대죄했다. 그 때는 그런 쇼라도 했다. 파면당하고 내란혐의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1호 당원을 제명은커녕 징계조차 하지 않으면서 버젓이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정권 유지”를 외치고 있다. 그들에게 국민은 여전히 개돼지다. 인천에 지역구를 둔 국힘 의원 윤상현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유권자들은 1년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니 신경 안써도 된다’. 개돼지로 여기는 속내를 털어놨으니 솔직하다고 칭찬해줘야 하는가. 그는 전광훈 목사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충성을 맹세했다.
국힘의 우후죽순식 출마 러시도 곱게 보기 어렵다. 처음에는 20명에 육박하더니 줄어서 11명이다. “나도 이 정도면 출마는 한 번 해봐도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라면 한가하다는 비판을 넘어 국민께 도리가 아니다.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도 물론 아니고. 이철우 경북 지사는 휴가내고 경선에 참여한다고 한다. 대선 출마가 어디 봄소풍 가는 건가. 지사 업무에도 소홀하지 않다는 걸 강조하려는 거겠지만, 눈 가리고 야옹 격이다. 대선은 휴가 내고 참여할 만큼 ‘부업’이나 겸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백보 양보하자. 우후죽순이건 휴가건 다 좋다. 그들이 출마 전에 해야 할 것은 12.3 비상계엄에 대한 입장과, 파면에 대한 확실한 사과다. 이런 기본도 지키지 못하면서 나라를 경영하는 자리에 출사표를 내는가. 국힘이건 국힘 예비후보들이건 한 마디로 염치들이 없다. 올바른 정신에 상식을 견지한다면 저런 행태가 가당키나 한가. 하긴, “계엄이 불과 두 시간만에 끝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내란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전직 검찰총장 보유 정당인데 더 말해 뭐하겠는가. 계엄난리를 치르고도 아직들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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