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 부결...재계 "일단 안도, 하지만 시간문제"
재계 “민주당 집권시 통과될 듯” 푸념
상법 개정안 통과시 ‘남소’ 우려 여전
한화 유증 사태…상법 개정 불쏘시개
학계, 상법 개정안 도입 필요 목소리
2025-04-17 17:34:03 2025-04-18 10:10:17
[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결국 폐기됐습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재의결에 나섰지만 부결된 것입니다. 재계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정권 교체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장미 대선’ 결과에 따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과 내란·명태균 특검법 등 재의요구 안건에 대한 표결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담은 상법 개정안 재의 안건이 17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94표, 반대 98표, 기권 1표, 무효 4표로 부결됐습니다. 재의결에서 부결된 법안은 자동 폐기됩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 이탈표를 끌어내기 위해 일부 조항을 삭제한 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재의결 정족수 200석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상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이 부결되며 최종 폐기되자 재계에서는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다만, 정권 교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민주당과 야권이 주도하는 상법 개정안이 6월 대선 이후 최종 통과될 것으로 전망되는 탓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재계 관계자는 정권이 교체돼 민주당이 집권하면 결국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겠냐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이지만 모호한 내용이 적지 않아 정치권이 보여주기식으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푸념했습니다.
 
재계 단체도 일단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로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상법 개정안이 국회 재표결에서 부결된 것은 주주가치 제고와 밸류업이 기업의 근원적인 경쟁력 제고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기업 현실에서 해당 개정안이 경영 판단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기업 경영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판단된다기업들은 향후 소수주주 보호 및 자본시장 신뢰 제고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향후 이를 위한 논의 과정에서도 기업의 경쟁력과 국제적 기준을 반영한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접근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입니다. 이사가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넘어 충실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했습니다. 또한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갔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비상 의원총회를 마치고 당 대표실로 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계는 상법 개정안 통과 시 각종 소송 남발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주주들의 배당 요구 등 이사들에 대한 소송이 잇따르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또한 주주와 이사 간 위임 관계가 새로 생기게 되면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배임이 성립될 수 있다는 관축도 나옵니다.
 
재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 소송 시 최종적으로 법원이 배임 판결을 내릴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이는 기업의 경영 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성재 법무부장관도 이날 본회의에서상법 개정안은 기본법인 민·상법 체계에 배치되고 배임죄 적용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할 우려가 있다또한 입법 취지와 달리 회사 경영진에는 불확실성을 초래하면서 주주 보호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고 위헌 소지도 있는 등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며 재의요구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한화그룹의 경영권 3세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역대급 유상증자는 상법 개정안의 당위성으로 작용했습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단기적으로 주가를 떨어트릴 수 있는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입니다.
 
서울 중구 청계천로에 위치한 한화그룹 본사 (사진=뉴시스)
 
앞서 지난달 31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도 한화를 직격하면서 논쟁이 가열됐습니다. 그는 주가는 증여세에 영향을 미치니 낮아진 주가로 증여세를 절감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얼마 전 자녀 소유 회사에게 지분매매 대가로 지급한 돈이 증여세의 재원이 될 거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우리 자본시장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로 이러니 자본시장을 현금인출기로 여긴다는 주주들의 비판에도 할 말이 없는 것이라며 상법 개정안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상법 개정안 찬성의 목소리는 여당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날 본회의 표결 직전 상법 개정안 찬성 입장을 밝힌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모든 주주까지 명문화하지 않고서는 지배주주의 독단적인 의사 결정과 불공정한 승계 구조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전체 주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할 때가 됐다고 했습니다.
 
학계에서도 상법 개정안 도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 목적 등 주주들이 피해를 볼 경우 이사회와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한화에어로 유상증자 사태는 한화의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대한 시장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며 하지만 적절한 제재가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안 도입뿐만 아니라 주주총회의 공정성·정당성·합리성을 강화시키는 구체적이고 부가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한 통화에서 “(상법 개정안은) 국제 스탠다드로 안하는 게 이상한 것이라며 주주가 돈을 맡겨서 만든 게 주식회사고, 그 돈을 관리하는 것이 이사기 때문에 이사는 의인화된 주식회사에 책임을 질 뿐만 아니라 돈을 맡긴 주주들의 이익 전체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법 개정안에서 말하는 이사는 사실상의 이사로 대주주나 총수를 당연히 포함하는데 이들이 승계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소수 주주 또는 자신이 지배하는 회사의 이익과 상반되는 일을 못하게 하는 것이라며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규범으로 제 구실을 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 변화를 위해 지금 첫 단추를 꿰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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