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시민들이 번화가인 동성로를 거닐고 있다. (사진=김성은 기자)
[대구=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이번에도 국민의힘을 뽑아주면 민주당의 폭거를 제압할 수 있긴 합니까?"
대구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에서 승객을 기다리던 택시 기사 이모씨(42세·남)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습니다. 그는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경선이 한창인 지난 18~19일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 지역 곳곳을 찾았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촉발한 보수 정권에 대한 두 번째 탄핵, 그럼에도 반성을 찾아보기 힘든 보수 진영의 모습에 TK 시민들의 실망감이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간 것은 아닙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는 안 된다"는 탄식 또한 여러 곳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데다 거대 야당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심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구 북구 산격동에 거주하는 김모씨(71세·남)는 "그동안 민주당은 다수 의석의 힘을 믿고 마음대로 해왔다"며 "아파트 동대표도 신원 조회를 거치는데, 전과 4범인 후보를 어떻게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느냐. 이것을 돕는 민주당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치권 자체에 대한 환멸감, 국민의힘에 대한 기대감 박탈로 형성된 '패배주의'는 TK 시민들의 투표 의욕마저 꺾었습니다. 김모씨는 "이번 대선에 투표하지 않으려 한다"며 "누가 해도 정치권 상황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삶은 더욱 팍팍해져 간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대구와 경북 투표율은 각 78.7%, 78.1%를 기록했습니다. 전국 투표율(77.1%)보다 모두 높은 수치입니다. 집값 폭등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문재인정부에 철퇴를 가하고 당시 윤석열씨와 맞붙었던 이재명 후보를 막아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분석됩니다.
대구·경북 최대 규모 시장인 서문시장 전경. (사진=김성은 기자)
"국힘에 인물이 없다…TK도 변화해야"
현재 대선 출사표를 낸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TK 시민들 대부분은 쉽사리 답하지 못했습니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빵을 파는 김모씨(67세·여)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대구에 와서도 서울 정치판에 기웃거렸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능력 검증이 되지 않았다"며 "다른 후보들도 경쟁력이 약하긴 마찬가지"라고 평가했습니다.
대권 출마 가능성을 열어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찍겠다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경북 경산시에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장모씨(53세·남)는 "관료로 오래 있으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고 차분한 성격에 호감이 간다"며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좌고우면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한 대행을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TK 지역 2030세대는 정치보다 정책에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경북대학교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씨(22세·남)는 "최근 이대남(20대 남성)의 보수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여성 정책에 치우친 진보에 대한 반발 심리"라며 "이대남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대구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경산에 거주한다는 황모씨(34세·여)는 "기성 정치인들이 미래세대 부담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들 입맛에 맞춘 국민연금 개혁안에 합의하는 모습을 보고 지지할 마음을 접었다"며 "청년층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후보를 뽑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진보 진영 인사가 선거에서 당선되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로 보수 색채가 강한 TK 지역이지만 변화에 대한 개개인의 열망은 컸습니다. 지역색을 의식하지 않고 지역에 애정을 갖고 침체된 경제를 살리는 인물에 한 표를 행사하고 싶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대구 토박이라는 김모씨(57세·남)는 "윤석열정부가 국정 운영을 너무 못했다. 경제가 망가져 우리 같은 서민들은 너무 힘들다"고 한탄하며 "계속 보수만 뽑아도 달라지는 게 없다. 대구·경북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구광역시와 맞닿아 있는 경북 경산시 시내 모습. (사진=김성은 기자)
대구=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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