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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4월 28일 13:52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IB토마토 홍준표 기자] 4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출자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과 벤처펀드 투자 허용을 위한 입법이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탈(VC) 업계는 높은 수익률과 안정성을 자랑하는 벤처펀드가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고 자본시장을 활성화할 기회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반대와 가입자의 안정성 우려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28일 VC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추산한 퇴직연금의 2023년 환산 누적 수익률은 2.35%인 데 반해 같은 해 벤처펀드는 70개 펀드를 청산하면서 평균 9%의 수익을 올렸다.
고용노동부 청사(사진=고용노동부)
벤처펀드 수익률 9.8%, '수익성·안정성' 증명
벤처펀드의 3년간(2021~2023년) 평균 수익률은 9.8%에 달한다. 2021년 청산한 총 50개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12.5%였으며, 2022년엔 74개 펀드를 청산하면서 평균 9.8%의 수익률을 거뒀고 2023년엔 9%였다. 특히 2023년엔 우크라이나 전쟁, 고금리 기조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당시에도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증명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에 반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2021년 2.0%, 2022년 0.02%, 2023년 5.26%로, 평균 수익률이 2.43%에 불과하다.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개인에게 전적으로 운용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원금보장 상품에 투자금이 쏠려 수익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정부는 10여 년 전부터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시도해왔지만, 퇴직연금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가 번번이 반대 의견을 고집하며 무산됐다. 지난해 10월에도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진 벤처투자 시장 도약방안’을 발표, 퇴직연금의 벤처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고용노동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비상장 주식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퇴직연금감독규정 9조에 따라 퇴직연금 벤처펀드 출자가 막혀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퇴직연금 사용자(기업) 자산에 관련된 규제만 일부 존재할 뿐, 운용에 대한 별도 규제는 없다. 특히 영국에서는 대형 퇴직연금 사업자 9곳이 2030년까지 운용 자산의 최소 5% 이상을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는 등 오히려 벤처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현재 약 400조원에서 15년 뒤 1172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퇴직연금 적립금 장기 추계와 자본시장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적립액은 2023년 말 382조4000억원에서 2040년 1172조원, 2055년 1858조원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현재 퇴직연금 내 국내 주식시장 비중은 1.6%(약 6조3000억원)에 불과해 자본시장 발전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특히 퇴직연금을 통해 매년 4000억달러(약 562조원)의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는 미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정치권서 입법 속도…VC, 출자 확대 '기대감'
정치권도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을 주요 입법 과제로 삼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낮은 수익률은 연금 가입률 저조(53%)와 일시금 수령 선호(90%)로 이어져 퇴직연금이 안정적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며 퇴직연금 기금화 입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안 의원은 민주당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회의 수석부위원장과 유력 대권주자인 이 전 대표 선거 캠프에서 정책부본부장을 맡고 있어, 입법이 좌절되더라도 향후 대선공약으로 재등장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동안 협회와 학계에선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윤건수 전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각종 포럼 등을 통해 “모태펀드는 국내 어떤 금융상품보다도 안전하고 수익률이 높다"고 강조했으며, 신임 김학균 회장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출자 허용을 강조한 바 있다.
벤처캐피탈업계 한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와 운용 인력의 전문화, 운용사 투자 노하우 등이 축적되면서 모험자본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안정성과 수익성 모두 높다”며 “이에 반해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물가상승률보다 낮아 수익성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벤처펀드의 출자가 허용된다면 전반적인 생태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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