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존 펠란 미국 해군성 장관이 국내 조선소들을 잇따라 방문하며 ‘한미 조선 동맹’이 본격화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장기적으로 국내 조선업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과거 ‘반도체법’처럼, 협력 뒤에 기술 이전이나 산업 기반 이전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정조대왕함'에 승선해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사진=HD현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선업 재건’을 천명한 가운데, 미 의회와 행정부도 이에 발맞춰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펠란 장관은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연달아 찾았습니다. 펠란 장관은 “이처럼 우수한 역량을 갖춘 조선소와 협력한다면 미 해군 함정이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조선업계와의 협력에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위한 조선업과 항만시설법(SHIPS for America Act. 조선업 부흥법)’을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은 미국 내 선박 건조를 장려하고 중국 선박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한국 조선업계도 미국과의 협력 확대에 나서고 있습니다. HD현대는 미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와 사업 협력에 나서며 미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화오션은 미 현지 조선소인 필리 조선소를 인수하며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한미 조선 동맹이 가시화될 경우, ‘슈퍼 사이클(호황기)’를 타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는 세계 최대 방산 시장인 미국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문제는 ‘조선업 부흥법’입니다. 해당 법안에는 ‘동맹국과의 조선업 교류 프로그램 신설’ 등 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과거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시행됐던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of 2022. 반도체법)’은 세계 유수의 반도체 기업들을 반강제로 미국에 유치하면서 △미 정부의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상세한 회계자료 제출 △중국 내 공장 증설 제한 등 독소조항을 통해 동맹국들의 반도체 기술 유출을 유도했습니다. 대만에서는 이미 반도체법을 미국이 대만의 반도체 기술을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선업 부흥법도 조선 기술 이전이나 생산 기반 이전을 유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전문가들도 이번 한미 조선 동맹이 단기적으로는 이득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핵심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최기일 상지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는 “대만의 사례처럼, 한국의 조선 생산 기반이 미국 본토로 옮겨가면 국내 조선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며 “기술 유출, 인력 유출 등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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