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 지도부 인사들에게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와의 단일화 압박을 받으면서 이른바 국민의힘의 '축출 잔혹사'가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윤석열씨 집권 기간 당내 윤핵관(윤석열씨 핵심 관계자)들이 주도해 당시 당대표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모두 쫓아냈는데요. 과거 국민들과 당원들에 의해 선출된 당대표가 윤씨와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축출되는 과정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범보수 진영의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이러한 행태가 반복되면서 김 후보 역시 이 후보와 한 전 대표의 길을 걷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왼쪽부터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후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 (사진=뉴시스)
의원 세 과시로 김문수 거취 '압박'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다수 의원들은 김 후보가 자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난 3일 이후 점차 단일화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김도읍·김상훈 의원 등 국민의힘 4선 의원 7명은 지난 5일 오전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오후에는 성일종·윤한홍 의원 등 3선 의원 13명이 '조속한 단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또 같은 날 저녁에는 원내지도부가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해 60여명의 의원들이 모여 김 후보를 향한 전방위 압박을 이어갔습니다.
전날엔 엄태영·김대식 의원이 김 후보가 있는 경주를 찾아가 김 후보 설득에 나섰습니다. 여기에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들도 입장문을 내고 후보 단일화에 서둘러 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어 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계 의원들은 전날 밤 김 후보 자택 앞까지 찾아가 단일화 절차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김 후보를 압박했습니다. 국민의힘에서 후보 단일화 논의를 위한 의원총회가 이날까지 사흘째 계속 진행됐습니다.
당 안팎에선 후보 교체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 "(단일화) 판이 깔렸는데도 김 후보가 참여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후보에 대한 당내 비판 공세는 과거 국민의힘의 당대표로 활동했던 이준석 후보와 한동훈 전 대표를 쫓아냈던 과정과 유사합니다.
이와 관련해 이준석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내가 김문수 후보와 정책적으로는 많은 이견이 있지만, 이번 상황은 언젠가 겪어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며 "하루는 이준석을 쫓아낸 상황에 대해 사과를 검토하면서 며칠 뒤에는 그와 똑같은 행동을 답습하고 있다면, 과연 그것이 진심이겠는가"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준석·한동훈 축출 때도 '여론전'
과거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취임해 대선 승리를 이끈 이준석 후보는 윤석열정부 출범 두 달 뒤인 2022년 7월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6개월간의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10월 당 윤리위는 당시 이준석 후보가 '양두구육' 등으로 비난했다는 이유로 당원권 1년 6개월 추가 징계 처분을 내리면서 이 후보는 당대표직을 잃었습니다.
이 대표를 몰아낸 세력의 중심엔 친윤계가 있었습니다. 당시 친윤계 핵심인 권성동 원내대표가 '대표 직무대행'을 맡다가 계파색이 옅은 주호영 의원에게 자리를 넘겼습니다. 이 시기 권 원내대표의 텔레그램 대화에 '체리따봉'이 공개된 것도 화제가 됐습니다. 이 대화에서 윤석열씨가 이준석 후보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언급했는데요. 집권여당 현직 대표에 대한 6개월간 직무정지라는 사상 초유의 중징계 결정의 이면에는 '윤심'(윤석열씨 의중)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한동훈 전 대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전 대표가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63%의 득표율로 당선돼 당대표로 선출됐습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12·3 비상계엄과 탄핵 후폭풍 등 지도부 와해로 대표직에서 축출됐습니다. 당대표 취임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물러난 겁니다.
한 전 대표가 당대표로 재임할 당시 국민의힘 내부에선 '한동훈 축출 프로젝트'인 이른바 '김옥균 프로젝트'가 가동됐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김옥균 프로젝트는 삼일 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처럼 한 전 대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 축출될 것이라는 시나리오입니다. 실제 국민의힘 차기 원내대표로 권성동 원내대표가 선출됐고, 권 원내대표는 한 전 대표의 뒤를 이어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습니다.
윤석열씨 집권 기간 국민들과 당원들에게 선출된 당의 지도자가 당 내부 인사들의 여론전에 의해 계속해서 축출되는 잔혹사가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일 김문수로 후보로 대선 후보가 확정된 뒤 친윤계 의원들의 일사분란한 후보 단일화 요구에 이준석 후보와 한동훈 전 대표의 사퇴 과정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엔 당대표가 아닌 대선후보라는 점이 달랐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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