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워렌 버핏의 은퇴와 좀비들의 미망
2025-05-09 06:00:00 2025-05-09 06:00:00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식투자의 대가이자 구루(Guru)로 칭송받는 워렌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이 은퇴를 선언했다. 여느 해처럼 5월 초 미국 네브라스카주의 작은 도시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헤서웨이 주주총회 행사에서 올해 말 CEO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직접 발표했다. 
 
1930년생, 올해 95세가 되는 나이다. 워렌 버핏은 고령에도 자신이 직접 투자한 기업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햄버거, 데어리퀸의 선데이 아이스크림을 매일 입에 달고 살면서도 건강하게 장수했음은 물론, 총기를 잃지 않고 현업에서 투자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노익장의 아이콘이자 전업 투자자들의 이상향이기도 했다. 
 
워렌 버핏이 버크셔 헤서웨이 대표직에서 내려오는 것은 60년 만이지만, 그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은 11세부터였으니 무려 84년간의 긴 여정이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진행된 IT 열풍의 한복판에서도 ‘굴뚝산업’ 투자를 고수해 투자자들의 비아냥을 들어야 했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일어난 월가 점령 시위 당시엔 “나를 포함해 부자들의 세율을 높여야 한다”며 시위대에 동조해 자본가들의 미움을 사는 등 긴 여정엔 온갖 구설이 따랐으나, 마지막 주총 질의응답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특유의 재치와 판단력, 투자 철학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버크셔 헤서웨이가 쌓아 올린 엄청난 성과뿐 아니라 태평양 건너 먼 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미친 긍정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굳이 이형기 시인의 시구절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그의 일생은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워렌 버핏의 퇴장은, 하필이면 국내 정치 현실에 겹쳐 묘한 대비를 이뤘다. 누구는 95세까지 존재감을 뿜어내며 현역으로 일했는데, 이제 70대 중반인 ‘그’가 대통령에 도전하고 나선 것쯤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워렌 버핏은 언젠가 다가올 그의 퇴장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상대로 그렉 아벨 부회장이 그의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워렌 버핏 같은 사람은 또 없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그’의 경우는 퇴장하지 않은 것을 우려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자신의 쓰임이 다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망에 갇혀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노욕이다. 
 
게다가 일찌감치 퇴장한 이들까지 무덤에서 걸어 나와 좀비처럼 그 주변을 서성이는 걸 보자니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이들보다 나이 많은 워렌 버핏이 오히려 젊은 느낌인 걸 보면, 아무래도 늙는다는 것은 나이 하나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우리나라 정치판엔 왜 존경할 만한 구루가 없을까? 95세 투자 대가의 고별 인사에 오마하 CHI헬스센터 주총장에 모인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같은 마음으로 멀리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대선판을 서성이는 이들에겐? 굳이 첨언하지 않겠다. 영화 <박쥐>의 마지막 장면처럼 떠오르는 해와 함께 사라질 테니.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박수 받고 떠나기엔 이미 늦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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