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세상에 죽은 화산은 없다"
죽은 줄 알았던 화산, 지하에선 살아 움직여
휴화산에서 지진, 지반 변형, 가스 분출 등 여러 불안정 신호 포착
'좀비 화산' 미스터리 풀려
2025-05-09 10:26:00 2025-05-09 14:36:39
25만년 이상 활동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우투룬쿠(Uturuncu) 화산. (사진=Sarah Doelger of the EarthScope Consortium, Inc.)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남미 볼리비아와 칠레 국경 근처 중앙 안데스산맥에 위치한 높은 봉우리 우투룬쿠(Uturuncu)는 '좀비 화산'으로 널리 알려진 화산입니다. '좀비 화산'이라는 표현은 비공식적인 용어로, 과학적 맥락에서는 '비분화성 활동을 보이는 휴화산'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화산은 25만년 이상 분화하지 않았지만, 활화산에서 관찰되는 가스 분출과 지진과 같은 활동 징후를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 이 휴화산에서 국제 연구진은 위성 데이터, 지진 활동 분석, 암석이 다양한 압력에 반응하는 방식을 모방한 컴퓨터 모델을 결합해 우투룬쿠의 내부 '해부학'을 더 명확히 재구성하고 불안정의 원인을 밝혀내고, “지하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이번 연구는 미국 코넬대학교,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중국 과학기술대학(USTC) 등 다국적 연구진이 협력해 진행한 것으로, 지난 4월28일 저명한 과학 저널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되었습니다.
 
30년에 걸친 미스터리, '솜브레로' 패턴의 실체 밝혀
 
우투룬쿠 화산은 안데스산맥 고지대에 위치한 고원 화산으로, 지난 25만년 동안 분화 활동이 없어 비활성 화산으로 분류되어왔습니다. 20년 전 위성 레이더 이미지는 볼리비아 남서부에서 가장 높은 산인 우투룬쿠의 정상 부근 약 93마일(150km) 넓이의 지역이 화산 내부의 힘으로 인해 상승했다가 다시 내려앉아 솜브레로(Sombrero) 형태의 지형 변형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특이한 지형 패턴은 수십 년간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명확한 해답이 없던 현상이었습니다. 이에 연구진은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현장에 지진계를 설치하고, 중력장 측정, 암석학 분석, 지질 물리 모델링 등 여러 방면에서 접근했습니다. 분석 결과, 화산 지하에서 마그마와 고온의 가스가 상승하며 지각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화산 폭발은 일반적으로 화산 아래의 마그마가 지하의 마그마 방으로 급속히 이동한 후 통로나 균열을 통해 지표면으로 분출될 때 발생합니다. 마그마가 더 두꺼울수록 가스를 가두어 압력이 쌓이다가 갑자기 방출되며, 이로 인해 마그마가 용암으로 분출되는 폭발적인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 따르면 우투룬쿠에서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대신 마그마, 가스, 염분 함유 액체가 수열 네트워크(활동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시스템)에서 상호작용하며 화산의 '좀비 같은 진동'을 일으켰습니다.
 
지진파로 내부를 CT처럼 살펴보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받은 기술은 지진파를 활용한 3차원 내부 영상화 기법입니다. 이는 인간의 몸을 CT로 스캔하듯, 화산의 내부 구조를 고해상도로 파악할 수 있게 한 기술입니다. 연구진은 이 기술을 활용하여 우투룬쿠 아래 약 10~20km 깊이에 알티플라노-푸나 마그마 체(Altiplano-Puna Magma Body)라는 거대한 마그마 저수지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약 200km에 걸쳐 있는 이 저수지는 지각 내 알려진 가장 큰 활성 마그마 체입니다. 이전 연구들은 마그마 저수지와 위의 산맥을 연결하는 활성 수열 시스템의 존재를 암시했지만, 이 네트워크 내에서 마그마와 유체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화산 아래와 내부에서 지열로 가열된 유체가 순환하는 과정에서 관측된 채널 시스템의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세부 사항을 밝혀냈습니다. 마그마 체가 지하 액체를 가열하고 가스를 방출하면서, 가스와 액체가 화산 분화구 아래의 방으로 이동해 모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은 우투룬쿠에서 지진을 유발하고 증기를 방출하며 화산 암석을 변형시켜 우투룬쿠 화산 중심부의 지표면에 연간 1cm씩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연구의 공동 저자이자 옥스퍼드대학교 지구과학부 교수이자 학과장인 마이클 켄달(Mike Kendall) 박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 '좀비 화산'이 곧 다시 활동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진 활동이 증가하고, 그 지진 활동이 깊은 곳에서 훨씬 얕은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것은 마그마가 이동 중이라는 신호이다. 그런 현상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화산이 가스를 방출하고 증기를 내뿜으며 진정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를 이끈 코넬대학교 매튜 프리처드(Matthew Pritchard) 교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화산이지만, 내부에서는 에너지와 생명의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었다”라고 설명하면서, “화산은 재난의 상징을 넘어서, 지구 내부의 역동성과 자원의 원천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했습니다.
 
분화 가능성은 낮지만… 세계 곳곳 '좀비 화산' 감시 필요
 
연구진은 이번 분석을 통해 우투룬쿠 화산이 당장 분화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하면서도, 유사한 구조를 지닌 주변 화산들 가운데 일부는 수십 년 안에 분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지상 및 위성 기반의 감시를 지속할 계획입니다.
 
프리처드 교수는 “지구는 늘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이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우투룬쿠와 같은 '좀비 화산'이 수십 곳에 이르며, “이번 연구는 이들을 조기에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여러 기술을 결합한 것이 우투룬쿠 화산의 지하 구조를 명확히 파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라며 학제적 연구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지진학과 암석 화학 및 지질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얻어낸 귀한 성과라는 것입니다.
 
조용히 꿈틀대는 땅속의 움직임. 우투룬쿠 화산은 묵묵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라고.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kosns.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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