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코스피 5000 시대' 개막을 비롯해 인공지능(AI)·반도체·방위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성장 정책'을 약속했습니다. 성장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대규모 투자 혹은 관련법 제정, 감세가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규제 완화' 없이 산업 활성화를 이뤄내기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일례로 이 후보가 내세운 '주 4일제' 정책은 되레 '기업의 경직'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산업 살려라"…'AI·반도체·방위' 정책 제시
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후보는 '1호 공약'으로 'AI 강국'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 후보가 대선 출마 선언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찾아간 곳도 AI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 '퓨리오사AI'입니다. 당일 페이스북에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고 'AI 세계 3대 강국'으로 우뚝 서겠다"고 밝혔죠.
AI 관련 예산을 증액하고,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강화해 대통령이 AI 산업을 챙기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개 이상 확보, AI 인재 양성, '한국형 챗GPT' 무료 개방에 힘쓰겠다고도 했습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에는 SK하이닉스 이천공장을 둘러보고, '세계 1등 반도체 국가'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반도체 특별법(반도체산업 생태계 강화 및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 법안)'을 신속하게 제정하고,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반도체에 최대 10%의 세액공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우리나라 수출을 견인하는 방위 산업에서도 대통령 주재 '방산수출진흥전략회의'를 정례화해 수출 현황을 챙기고 방산 수출 기업에 연구·개발(R&D) 세액을 감면하는 방향의 성장책을 내놨습니다.
이 후보는 "국내 7개 주요 방산기업 수주 잔액이 지난해 말 100조원을 돌파했다"며 "K-방산은 반도체·이차전지·미래 자동차 등과 더불어 한국 경제를 이끌어 갈 미래 먹거리"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른 대선 후보들도 성장과 경제에 방점이 찍힌 공약을 발표했는데요.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달 '경제 살리기' 공약으로 기업 투자 확대와 법인세·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약속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해외로 떠난 한국 기업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외국인 노동자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했고, 최근 한덕수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는 'AI혁신전략부' 신설을 중심으로 한 AI 정책을 첫 공약으로 내놨습니다.
"'규제 완화' 없이 산업 성장 어려워"
이 후보가 윤석열정부에서 닥친 경제 위기를 언급하며 산업 육성을 외치고 있지만, 산업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이 후보 공약에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산업 활성화에 있어 규제 완화가 절실한데, 민주당 정부가 과연 규제를 풀겠냐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후보는 주 4.5일제 도입 기업을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주 4일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방침이 담긴 '직장인 정책 발표문'을 페이스북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경제 위기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기업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몇 년 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했을 때는 기업들의 실적이 잘 나오고 나름대로 호시절이었다"면서 "지금은 미국의 관세정책 등 대내외 변수로 불확실성이 너무 커졌다. 열심히 일해서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는 마당에 주 4.5일제, 주 4일제는 기업 입장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반도체 기업만 해도 '주 52시간제'를 유연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응하고 있지 않다"며 "현행 제도는 경직돼 있어 인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부연했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8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에서 열린 'K-반도체' AI메모리반도체 기업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울러 이 후보는 코스피(유가증권시장)지수 5000을 달성하겠다며 자본시장 관련 정책을 공개한 바 있는데요. 소액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추진하는 동시에 기업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정부가 '경제·산업 성장 로드맵'을 제시하고,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도입해 주가 조작을 막겠다는 내용입니다.
증권업계에서는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주가 부양은 산업 활성화와 더불어 기업의 실적 성장이 핵심입니다. 이 또한 규제 완화가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iM증권 연구원은 "기업의 주가는 실적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에 기인한다"며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과 별개로, 해당 법이 코스피 5000 달성과는 무관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큰 흐름에서 규제 완화를 하지 않고 산업을 살리겠다는 공약은 '공수표'에 불과하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고강도 관세 정책 이면에서는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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