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김태은 기자] 미국이 대중국 관세를 90일간 30%로 대폭 인하한 가운데,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25%)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미국이 다른 국가에 부과하는 관세가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면,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인데요. 한·미 관세협상 결과에 따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저 상호관세율로 제시했던 '10%' 미만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25% 자동차 품목관세'도 논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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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관세율, 중국 34%·한국 25%…조정 불가피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은 14일부터 800달러 미만의 중국발 소액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120%에서 54%로 인하합니다. 최소 100달러의 고정 관세는 유지하기로 했는데요. 전날에 이어 중국과의 화해 무드를 이어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에서 중국에 대한 125% 보복 관세를 34%(기존 상호관세율)로 인하하되, 24%는 90일 동안 유예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관세는 펜타닐 관세 20%, 기본상호관세 10%를 합친 30%가 됐습니다.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던 미·중이 비교적 신속하게 협상의 성과물을 만들어내면서 한·미 관세협상 역시 새 국면을 맞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이번 관세전쟁에서 주요 타깃은 '중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수일 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의 고위급 회담을 가질 걸로 보이는데, 이 회담이 향후 협상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어 대표는 오는 15~16일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을 예정입니다.
첫 고위급 회담과 달리 미국 측은 구체적 요구사항을 내놓을 걸로 보이는데요. 한국 입장에서 협상의 기준점은 '상호관세율 10%'입니다. 한국은 90일 유예 조치가 끝나는 7월9일(현지시간)부터는 본래의 상호관세율 25%를 적용받을 예정입니다. 이 관세율은 중국 측과 비슷한 수준인 데다, 당장 중국이 적용받게 되는 기본상호관세 10%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관세전쟁이 봉합 국면으로 전환된 만큼, 한국에 적용되는 상호관세율 역시 재조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상호관세 10%에 대해 "예외가 있을 수 있다"며 "누군가 우리를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해준다면 예외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결국은 한국이 무엇을 줄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한·미 협상은 논의가 오갔던 '줄라이 패키지'(7월 타결안)에 맞춰 이어질 전망인데요. 그간 미국 측이 요구해왔던 소고기 월령제한 해제, 주한미군 방위금분담금 인상, 알래스카 천연액화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등이 협상카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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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따라 일부 무관세 시사…"제한적 범위 내 저율관세할당 등 설득"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CNN> 인터뷰에서 협상 결과에 따라 일부 국가의 일부 품목에는 무관세를 적용할 뜻을 시사했습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영국과 타결한 무역 합의에서 10% 기본상호관세는 유지하기로 했지만, 영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는 폐지했습니다. 10만대의 영국산 차량에 대해선 자동차 품목 관세(25%) 대신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영국은 대신 미국에 에탄올, 소고기, 농산물, 기계류 등의 시장을 개방해 미국 제품에 50억달러 규모의 수출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습니다. 러트닉 장관은 이를 거론하며 "미국이 각국과의 협상에서 유연하고 정교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도 자동차 관세를 두고 협상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합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조지아주에 세운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물량을 최대 121만대(지난해 미국 판매량의 약 70%)까지 끌어올리더라도 일부는 관세 영향권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시장조사기관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트럼프 행정부의 25% 관세 부과로 한국의 승용차 생산량이 올해와 내년 총 31만5000대가 줄어들 걸로 봤는데, 이에 따라 '한국판 러스트벨트'(제조업 쇠락 지역)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과 영국은 상황이 달라서 같은 자동차 품목관세라고 하더라도, 협상 과정은 녹록지 않은데요. 영국은 미국의 몇 없는 무역수지 흑자국이기에 미국이 '거칠게' 대응할 이유도 없다는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또 영국이 수출하는 차량 역시 롤스로이스 등을 비롯한 고급차량이 주류라 미국이 주력하는 자동차 생산품과는 다릅니다. 영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량은 연간 10만대 수준으로, 150만대 이상 수출하는 우리나라가 영국과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관세율을 일부 인하하는 수준의 합의는 있을 수 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자동차 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적자를 많이 보는 품목이라 수입규제를 완전히 철폐시킬 리는 없다"면서도 "영국 협상이라는 선례가 생겼기 때문에 제한적 범위 내에서 미국에 피해를 덜 주면서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저율관세할당 등을 부품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 교수는 "내세웠던 원칙의 예외가 계속 생기는 상황"이라며 "미국이 요구하는 LNG 수입, 농산물 수입 일부 확대 등 미국이 납득할 만한 안을 제시한다면 (고율 관세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조언했습니다.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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